정치 과잉의 비극[임용한의 전쟁사]〈319〉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0일 2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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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를 보면 나라와 민족, 문화에 따른 특성이 있다. 러시아군은 옛날부터 방어전에 강했다. 공격은 끈질겼지만 소모적이고 세련되지 못했다. 게르만족은 우악스러웠지만 영리했다. 17세기부터 프로이센과 독일군은 우직한 듯하면서 기동과 전술 능력은 선두를 달렸다.

특정 국가에 특별한 특징이 오래 지속되는 건 신기할 뿐이지만 이것이 민족성이라든가, DNA에 내재한 능력은 아니다. 지정학적 구조, 삶의 방식, 문화적 배경과 관습에 의해 지속되는 것뿐이다.

그런 이유로 정반대의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신화를 써 갔지만 승리를 이끈 정치인들은 의외로 전후에 역풍을 맞았다. 사실 이스라엘 정치는 구조적으로 늘 불안하고 취약했다. 단지 전쟁과 외풍이 후유증을 최소화했던 것뿐이다. 내부에서 극렬하게 대립하던 정파들도 막상 정권을 잡고, 전쟁이나 국익이 걸리면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어떤 범주 안에서 행동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정형성, 사명감이 사라졌다. 네타냐후 정권은 초강경해 보이지만, 그 정권도 알고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집단들의 연립정권이다. 합리적 설득과 단합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국들은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복잡하지만 다들 정치 과잉이고, 이기적인 정치가 되어 있다. 국가적 사명감, 국가적 방향성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최근 유엔에서 144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했다. 커다란 진전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갈 길이 멀다고 할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는 이미 2쪽, 3쪽이 나 있고, 영토도 분리돼 있다. 국가적 정체성이 강해지면 2개의 나라로 나뉠 수도 있다.

이게 중동만의 문제일까? 세계가 그렇다. 갈등에 취약한 지역, 지표가 얇은 지역에서 먼저 터져 나오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중동전쟁의 진짜 교훈은 이것이다. 정치가 염치와 상도를 넘은 지역의 비극.

#정치 과잉#방어전#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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