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로 발표되는 대남 담화들을 읽으면서 실소한 게 여러 번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 막말로 범벅된 표현의 저급함과 정제되지 않은 문장들이 혀를 차게 만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으로,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북한의 최고 실세가 썼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오물 풍선이 드러낸 北 히스테리
담화에는 “재잘거리는 놈들한테 줴박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거나 “남조선 괴뢰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지루하고 진저리가 나서 몸이 다 지긋지긋해진다”는 식의 감정적 사족(蛇足)이 곳곳에 들어 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 발언을 놓고는 “우리의 대륙간탄도미싸일을 금방 보고도…?”라고 혼잣말하듯 묻기도 한다. 소위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대북전단금지법을 채근한 2020년 담화에선 한국 정부와 탈북자들을 향해 ‘망나니’, ‘똥개’ ‘인간추물’ 같은 단어를 배설하듯 쏟아냈다.
김여정은 최근 오물 풍선을 살포한 뒤에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로 여기고 계속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것들의 눈깔’ 같은 표현을 늘어놓고는 대남 위협으로 담화를 마무리했다. 한국의 대북전단과 확성기 방송 같은 심리전에 대한 북한의 히스테리가 느껴진다. 발사 후 2분 만에 폭발해 버린 정찰위성의 실패가 이를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수십 t(톤)의 쓰레기를 최소 3500개 풍선에 실어 보내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희한한 도발 방식부터가 신경증적이다.
2016년 북한이 대형 풍선을 대량으로 띄웠을 때는 대남 메시지를 담은 ‘삐라’가 들어 있었다. 발견된 것만 10만 장이 넘는 전단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정치적 오물’이라고 비하하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풍선 안에 실제 오물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이번엔 전단 한 장 없이 냄새나는 거름과 쓰레기뿐이다. 북한의 실상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전단 같은 방식으로는 심리전 맞대응이 어렵다는 것을 평양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결국 확성기 조준 타격을 포함한 재래식 국지 도발을 감행한 뒤 협상 과정에서 방송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앞서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한 김강일 국방성 부상의 담화에서 ‘해상 국경선’을 거론하며 “해상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대한민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벌써 4차례 반복되고 있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는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 또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벌써부터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은 대북전단 살포가 원인”이라며 이를 막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잇따른 안보 참사를 덮기 위한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거야(巨野)는 윤석열 정부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북의 도발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南南갈등에 대북정책 휘둘려선 안 돼
우리끼리 싸우게 만드는 남남갈등 전술은 북한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심리전이다. 대북 대응의 정책 일관성을 흔들어 효력을 약화시키면 정부의 강경 조치들은 어느새 북한이 ‘감내할 수 있는 조치’로 흐물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이 추가될 때마다 책임 소재를 따지며 서로 삿대질을 해대는 상황에서 국방부가 외쳐온 ‘즉·강·끝(즉각, 강력하게, 끝까지)’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까. 북한의 이런 의도에 말려들었다간 북한의 중대 도발은커녕 오물 풍선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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