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제때 못 갚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9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말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로, 2015년 3월 말(0.59%) 이후 가장 높다. 팬데믹 위기 이후 빚으로 연명해오던 자영업자들이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와 내수 침체의 여파로 더는 버티기 힘든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전체 금융권으로 확대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나이스평가정보 자료를 보면 3월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은 1110조 원을 돌파했고, 이 중 3개월 이상 연체한 대출액은 31조 원으로 1년 새 53% 급증했다.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나 돌려 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다중채무자도 절반을 넘었다. 자영업 대출의 부실 징후가 날로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매출 급감과 인건비·원자재값 급등 등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올 1분기 서울에서 폐업한 외식업체는 6000개에 육박하며 1분기 기준으로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자영업자의 퇴직금’으로 불리는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 지급액도 증가하는 추세다.
더 큰 문제는 장사를 접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데도 폐업하지 못하고 ‘좀비’처럼 연명하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폐업하면 은행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데다 신규 대출도 받을 수 없는 탓이다. 인테리어 복구나 철거 등 폐업 비용도 상당하다. 이러다 보니 폐업 대신 휴업을 하면서 일용직을 뛰거나 손해를 보면서도 장사하는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만기 연장, 운영자금 지원 등으로 자영업자의 연명을 돕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되레 부실 위험이 큰 자영업자의 퇴출을 막아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취약 고리인 자영업자 대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별적인 채무 재조정 방안과 함께 과포화 상태인 자영업 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의 폐업을 과감하게 지원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옮겨갈 수 있도록 직업 재교육, 구직 연계 대책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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