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 23%가 PTSD 고위험군… 국가 심리지원 급하다[기고/최기홍]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1일 22시 51분


최기홍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장
최기홍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장

서울시에서 학술연구 용역 지원을 받아 지난해 10월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경험과 우울, 불안, 자살 위험 등 정신건강 관련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서울시민은 평균 아홉 건 이상의 주요 트라우마(폭력, 사기, 재난 및 사고 등)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4개국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실태를 조사한 수치(평균 3.2건)나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한국 청장년의 트라우마 실태 보고서에서 보고한 수치(평균 5건)를 훨씬 상회한다. 또 서울시민의 23.4%는 잠재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TSD 증상 심각도는 우울, 불안, 자살위험성, 사회적 고립, 알코올의존증 증상과도 높은 상관을 보였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삶을 아주 강하게 뒤흔든다. 뇌의 정서 조절 기능을 방해할 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패턴과 균형을 흔들고, 대인관계를 어렵게 하며, 직장 생활이나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건강의 어려움은 더 복합적이고 심각하다. PTSD의 경우 증상이 장기간 이어지기도 하고, 뒤늦게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과학적으로 효과가 철저하게 검증된 심리치료법을 사용해 가능한 한 조기에 중재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PTSD를 경험하는 국민에게 트라우마 초점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근거-기반 심리치료(Evidence-based Psychotherapy)를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경우 재향군인 부서(Veterans Affairs)를 통해 전쟁 경험 후 트라우마를 겪는 군인 생존자에게 국가 예산을 들여 인지행동치료 등을 지원한다. 영국은 국가건강서비스의 심리치료 프로그램(The NHS Talking Therapies) 및 단계적 돌봄 모델(Stepped Care model)을 통해 증상의 심각도를 선별하고 국민에게 필요한 맞춤형 심리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비용 대비 3배가량 높은 국가 이득이 있음이 보고됐다. 서비스를 받고 회복한 국민들이 이전보다 의료 서비스를 덜 이용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했고,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PTSD 증상을 경험한 10명 중 7명 이상이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지 않았다.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한 서울시민의 절반가량이 인증된 심리전문가에게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국민이 국가에 외치는 도움 요청의 신호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7월부터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시작한다. 올해 말까지 국민 8만 명, 2027년까지 50만 명으로 서비스 수혜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시도 시민들이 심리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 전달체계 개편을 준비 중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에게 부모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번 사업이 잘 정착해 트라우마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국민이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효과가 검증된 심리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울시민#ptsd#고위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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