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의대가 있는 서울 지역 8개 대학 총장 또는 부총장을 한데 불러 재정 지원을 약속하며 의대 총장 협의회 참여를 요구했다고 한다. 의대 총장 협의회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32개 지방 대학 총장들이 의대 교육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이 부총리는 이날 만남에서 “서울 지역 의대는 증원은 안 됐지만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 지원은 일부 해줄 것”이라며 사실상 동참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 부총리로서는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의대생 복귀와 의대 교육 지원 대책에 전국 의대 총장 전원이 한목소리로 힘을 실어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증원된 의대들의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의대 증원과 무관한 대학의 총장들까지 나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들러리 서라는 말밖에는 안 된다. 올 4월 지역 거점 국립대들이 의대 증원분을 자율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건의서를 냈을 때도 정부가 먼저 감축을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 ‘관제 건의서’라는 뒷말이 나왔다. 대학 규제 철폐와 반지성주의 배격을 내세운 정부가 재정 지원을 무기로 지성의 전당인 대학 수장을 목적 달성에 동원하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해 의대생 복귀가 시급한 것은 사실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의대 신입생들은 7000명 이상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에게 ‘관제 동원’식 해법이 먹혀들 리 없다. 의대생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증원 정책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원을 하더라도 당장 가르칠 교수와 교육 수련 시설이 부족하니 점진적 증원을 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러한 합리적 견해까지 무시한 채 대폭 증원을 밀어붙여 놓고 이제 와서 총장들 앞세워 학생들 휴학 못 하게 강요하면 학생들이 말을 듣겠나.
총장과 의대 교수들에게 전공의와 의대생은 제자들이다. 일반적 고용 관계나 상하 관계가 아닌 사제지간이라는 교육적 특수성을 무시하고 정부 편에서 복귀를 압박하라고 한다면 학내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 의대와 병원 교수들이 17일부터 휴진을 선언한 데 이어 대한의사협회가 18일 집단 휴진과 궐기대회를 예고했다. 이제는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거친 압박이 아니라 합리적 설득으로 의정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환자들 피 말리는 의료 대란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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