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둔함과 맹신[이은화의 미술시간]〈323〉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2일 2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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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나 신화, 문학은 수많은 화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돼 왔다.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는 성경이나 신화 속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제목도 ‘트로이로 향하는 트로이 목마 행렬’(1760년경·사진)이다.

티에폴로는 대형 유화를 위한 습작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데, 이미지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쓴 ‘아이네이스’를 참고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나무로 제작된 말을 실제 말처럼 그렸다. 근육질과 갈기, 꼬리의 질감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해 사실감을 더했다. 트로이의 민중들은 비현실적으로 큰 백마를 성으로 끌고 가는 중이다. 왼쪽의 건장한 병사와 남자들은 뒤에서 말을 밀고 있고, 여인과 아이가 포함된 오른쪽 무리는 말의 몸에 묶은 밧줄을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목마 안에 숨은 그리스군들에게 곧 정복당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신의 선물이라 여기며 기쁘게 옮기고 있는 것이다.

화면 가운데에는 트로이 왕의 딸 카산드라가 체포되는 장면이 작게 그려져 있다. 목마가 성 안에 들어오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던 인물이다. 같은 경고를 했던 트로이 신관 라오콘도 두 아들과 함께 뱀한테 휘감겨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 화가는 말의 측면에 ‘팔라디 보툼(PALADI VOTUM)’이란 라틴어 글귀를 새겨 넣었다. ‘팔라스(아테나)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뜻으로 팔라스는 지혜와 용기, 전쟁의 신이다.

안타깝게도 전쟁의 신은 트로이 편이 아니었다. 트로이인들에겐 지혜도 용기도 없었다. 왕은 어리석고 아둔했고, 군사와 민중들은 맹목적이었다. 진실을 말한 자들을 억압하고 그들이 죽는 것을 방관했다. 18세기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도자의 아둔함과 국민의 맹신은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 말이다.

#성경#신화#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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