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제2, 제3의 현대차-도레이 협력이 중요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2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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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산업1부장
박형준 산업1부장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무게를 줄여야 연료소비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차체 혹은 기체의 강도는 높아야 한다. 땅과 하늘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기업을 추구하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서는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철강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 도레이그룹은 글로벌 탄소섬유 시장에서 세계 1위다. 탄소섬유는 ‘꿈의 소재’로 불린다. 기존 철강보다 5배 가볍고 강도는 10배 이상이다. 자동차의 안전성과 연비를 모두 높일 수 있기에 BMW, 람보르기니 등은 성능 개선을 위해 탄소섬유를 사용해왔다.

한일 정치가 냉각되면 경제도 휘청

현대차와 도레이는 올해 4월 전략적 협력 계약을 맺었다.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 등 신소재를 공동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CFRP는 고강도·고탄성의 경량 신소재로 자동차 차체부터 개별 부품에까지 널리 쓰인다. 두 회사가 손잡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협력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어날 수 없었다.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됐던 2019∼2022년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지냈다. 당시 한일 기업인들을 만나면 예외 없이 “경제는 정치와 별개”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대형마트들은 ‘한국 상품 전시회’를 잇달아 취소했다. 이유를 물으면 “행사 계획이 바뀌었다” 등으로 얼버무렸다. 일본 내 한국 상품 판매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식품기업의 한 영업사원은 “월별 매출이 전년보다 20∼30%씩 계속 줄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고하면 본사는 ‘언제까지 그 핑계를 댈 거냐’고 말해 곤혹스럽다”고 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의류 기업 유니클로는 한국에서 잇달아 매장 문을 닫았고, 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과 인피니티는 한국에서 철수했다. 그런 엄혹한 시기에 한일 기업이 어떻게 협력한다고 발표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양국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바뀐 뒤 일어난 변화다. 최근 양국 경제계 만남도 활발하다. 그 자리에선 “경제 협력 관계가 정권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되게끔 만들어보자”는 목소리도 예외 없이 나온다.

물론 과거사, 영토 등을 놓고 일본과 협력을 외칠 수는 없다. 역사 교과서에서 침략을 지우려는 움직임,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을 외면한 채 자국에 유리한 일부분만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모습, 사회 지도층의 망언 등에 대해선 분명하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는 다르다. 한일이 경제 협력을 할수록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실제 도레이는 지난달 또 하나의 발표를 했다. 2025년까지 경북 구미시에 총 5000억 원을 투자해 생산 역량을 더 늘리겠다고 했다. 현대차와 신소재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한 것도 공장 증설 판단에 기여했을 것이다. 공장을 새로 지으면 국내 고용이 늘고 건설자재 소비도 늘어난다.

경제협력 과실 체감하게끔 만들어야

한국과 일본의 상공회의소가 분석했더니 한일이 관세를 전면 폐지하면 양국 모두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소비자의 후생이 증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이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쉬운 사례로 시작해 양국이 성공사례를 늘려가자”고 제안했다. 공감한다. 국민들이 그런 성공사례의 과실을 체감할수록 양국 정치 상황이 어떻든 경제 협력에 대한 믿음이 커질 것이다. 제2, 제3의 현대차와 도레이의 협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현대차#도레이#한일#경제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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