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치마끈이 저절로 풀어지더니, 오늘 아침엔 거미가 날아들었네. 연지분을 이젠 못 버리겠네. 분명 낭군이 돌아올 징조이려니. (昨夜裙帶解, 今朝蟢子飛. 鉛華不可棄, 莫是藁砧歸.)
―‘옥대체(玉臺體)’·권덕여(權德輿·759∼818)
치마끈이 저절로 풀리고 아침부터 거미가 날아드는 걸 보자 여자는 마음이 달뜨기 시작한다. 이게 학수고대하던 낭군의 귀환을 알리는 길조(吉兆)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간 남편이 부재했기에 자신의 용모를 가꾸는 데는 아예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연지분을 내다 버릴 생각까지 했나 보다. 하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대단한 결기를 내보이기라도 하듯 여자는 화장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남성 우월 의식이 심했던 시절, 아낙이 제 마음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민가풍을 답습했거나 낭군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시인이 ‘치마끈이 풀어지면 술과 음식이 생기고, 거미가 사람 옷에 타고 오르면 기쁜 일이 생긴다’는 풍속기(風俗記)의 기록을 장난삼아 한번 활용해 보았든지.
수사나 품격으로 보아 재상까지 오른 시인의 작품이라기엔 왠지 생뚱맞다는 느낌을 주지만 이게 바로 옥대체의 특징. 미려하고 정교하다. ‘옥대체’는 여자를 주요 제재로 한 시를 통칭하는 말로, 옥대(옥으로 장식한 화장대)가 부녀자와 관련이 있는 사물을 가리킨 데서 유래한다. 연시(戀詩) 혹은 애정시라고도 하는데 시제라기보다는 시의 한 갈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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