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한강을 내려다보며 호텔식 조식을 먹는다. 오후에는 지하에서 골프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해외 업체가 디자인한 건물 주변의 산책로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요즘 분양하는 아파트들이 그리는 입주민의 삶이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의 진짜 모습은 이런 고급스러운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비가 오면 지하가 물바다가 되고, 지은 지 얼마 안 된 집이 결로와 곰팡이에 시달리기도 한다. 원자재 값과 인건비가 급등해 아파트를 제대로 짓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는 급증하는 하자 분쟁 건수에서 알 수 있듯 현실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공급망 위기가 본격화된 2020년 이후 지은 아파트는 피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이런 상황에서 재건축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은 아파트 수만 260만 채가 넘는다. 1980년대 집값 안정을 위해 수도권에 대대적으로 아파트를 공급한 데 따른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다. 모든 아파트를 꼭 재건축할 필요는 없지만 주택 수요가 많은 주요 도심에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외에는 주택을 공급할 땅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재건축 조합과 건설사들이 이 ‘재건축의 시대’를 감당할 능력이 될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 1㎡당 평균 분양가격은 1177만 원이다. 전월 대비 2.36%, 전년 같은 달 대비 26.7% 올랐다. 3.3㎡당 평균 분양가는 3884만 원으로 곧 4000만 원을 넘을 기세다. 최근 물가 오름세나 건설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를 생각해 보면 앞으로도 공사비가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올라간 공사비가 재건축 사업의 상수(常數)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재건축 수주 현장에선 여전히 누구도 비용 절감 방법에 관심이 없다. 내장재나 빌트인 가구, 가전을 수입산으로 장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물과 건물을 잇는 ‘스카이브리지’나 건물 옥상의 ‘인피니티 풀’ 같은 고급 호텔에나 있을 법한 시설을 너도나도 짓겠다고 한다. 단지 내에 고급 리조트를 본뜬 조경을 하고, 해외 디자이너를 초청해 놀이터나 라운지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디자인한다.
어떤 사업을 하든 총비용을 예상하고 최대한 그 안에서 비용을 관리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에서는 이런 당연한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건설사는 저가로 입찰해 일단 사업을 수주한 뒤 공사비를 수천억 원씩 올리고, 조합은 ‘랜드마크 단지’가 돼 시세차익을 높일 방법만 궁리한다. 높아진 비용은 일반분양가를 높여 조합원도 건설사도 아닌,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앞으로 더 오를 거라는 불안감에 청약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에게 비용이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재건축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재건축의 문법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사비 갈등이 계속해서 장소만 바꿔 반복될 것이다. 건설사와 조합이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면 공공이 나서야 한다. 새로운 룰과 심판의 역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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