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금요일에 쉴 때면 어린이집이 끝나는 오후 4시에 두 딸을 데리러 간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다음 목적지는 놀이터다. 40년 넘은 우리 아파트의 낡은 놀이터가 아니라 길 건너 신축 아파트의 새 놀이터다. 우레탄이 깔려 있고 큰 미끄럼틀이 있고 연못에 우렁이도 산다.
그 아파트는 단지 안팎으로 곳곳에 철제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밖에선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고 안에선 버튼만 누르면 나올 수 있다. 일부 출입구는 반대다. 울타리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아파트를 세우는 데 들었을 막대한 비용과 높은 분양가, 치안과 사생활 우려, 한 울타리 안에 산다는 동질감과 그 밖에 대한 이질감.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는 입주민끼리 사돈을 맺자며 혼사까지 주선하고 나섰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건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비슷하다는 것, 그래서 따져볼 것이 줄어든다는 계산일 것이다. 저출산 비혼 시대에 이런 시도라도 어디냐고 할 수 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대단지 아파트 안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물론이고 학교도 있다. 그래서 친구들 대부분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 평생의 반려자까지 아파트에서 찾는 세상이라면 나중에는 그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단지 인근 같은 병원에서 태어나 같은 초중고교를 다니고 잠시 나가 대학을 마치면 아파트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고 늙어 생을 마감하는 것 말이다. 입주민 전용 화장장, 봉안당까지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집 이상이다. 서울시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아파트에 사는 기혼 여성은 단독주택이나 연립, 다세대 주택에 살 때보다 아이를 낳겠다는 의사가 더 높았다. 통계청 3월 발표에 따르면 가계 평균 자산 중 78.6%는 부동산이다. 아파트는 출산 인프라이자 전 재산이고 자신의 위치와 공동체를 규정하는 존재다. 그 안에 삶의 반경이 묶인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국민 중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51.9%로 절반뿐이다. 또 다른 절반은 단독주택, 빌라 등에 산다. 다양한 주거의 형태와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아파트에 대한 집착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심각해지는 양극화, 삶을 위협하는 불확실성에 스스로를 좁은 단지 안에 가둔 건 아닐까 궁금해진다. 그러다 보니 밖은 낭떠러지라도 되는 것처럼 “그 친구는 어디에 산다니?” 걱정 가득하게 묻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파트 울타리를 세우고 이쪽저쪽 갈라도 아이들은 섞여 놀았다. 다른 아파트에 사는 아이, 빌라에 사는 아이, 옆 동네 아이도 약속한 듯 오후 4시 같은 놀이터에 모여들었다. 같이 뛰고 킥보드를 밀었다.
물끄러미 지켜보는 사이 어둑어둑 해가 졌다. 슬슬 집에 가야 하는데, 울타리에 갇힌 필자는 철문 비밀번호를 몰라 누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려야 했다. 그때 일곱 살 딸과 친구들이 우르르 철문 옆 덤불 뒤편으로 뛰어갔다. “얘들아 어디 가?” “아빠 일로 와!” 아이들을 따라갔더니 작은 개구멍이 있었다. 아이들은 잽싸게 그 틈으로 빠져나가 의기양양하게 철문을 열고 씨익 웃었다. 어른들의 울타리는 아이들에겐 무용지물이었다. 모여 놀던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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