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갈수록 ‘수포자’도 늘고 ‘국포자’도 늘어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7일 23시 15분



요즘 입학 대기 줄이 가장 긴 학원은 독서·논술 학원이다. 국어는 사교육비가 두 자릿수씩 증가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데도 문해력이 떨어지는 ‘국포자’(국어를 포기한 자)가 늘고 있어서다. 상수나 함수 같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를 만들기도 한다. 17일 발표된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선 학생 10명 중 1명이 ‘국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실시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중3, 고2 학생을 대상으로 국어, 수학, 영어 과목별 기초학력 도달 여부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것이라 문제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국어라면 비유법에 해당하는 문장을 고른다거나, 수학이라면 기본적인 인수분해를 하는 정도다. 따라서 ‘기초학력 미달’에 해당한다면 교실에 앉아 있어도 아예 수업을 이해 못 한다고 보면 된다. 그 위 단계로는 기초→보통→우수 학력 순으로 나눈다.

▷특히 고2 학생의 기초학력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 8.6%, 수학 16.6%를 기록했다. 표집 조사가 시작된 2017년 이후 가장 높았다. 중3 학생은 국어, 수학, 영어 모두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약간 줄긴 했지만 덩달아 보통학력 이상인 중상위권 학생도 급감했다. 기초학력이 개선됐다기보다 하향 평준화에 가깝다.

▷교육 당국은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늘어난 건 코로나19 유행 동안 학교가 문을 닫은 탓이 크다고 분석한다. 그 기간 사교육 참여 시간, 스마트폰 사용 시간, 학습 공간 확보 등 개인적인 환경에 따라 학력 격차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지나가고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음에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되레 늘어났다는 점이다. 학교가 ‘코로나 후유증’을 치유하고 교육 사다리를 재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텐데, ‘코로나 세대’의 학력 격차가 평생에 걸친 직업과 소득 격차로 이어질까 봐 우려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학업성취도 평가를 시행한다. 학생들의 실력을 제대로 진단해야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처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고 학교별, 과목별 점수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별, 부모의 소득에 따른 점수까지 공개한다. 이 점수가 낮은 학교일수록 예산을 더 지원해 코로나19 학력 격차 해소에 나서고 있다. 국내서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두고 ‘학교 줄 세우기’라는 교육계의 거부감이 큰 탓에 전국 학생의 3%만 표집 조사를 한다. 사실상 학교 간 비교는 불가능해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수 없다. 경쟁을 터부시하며 무기력증에 빠진 학교부터 바뀌어야 ‘국포자’ ‘수포자’ 학생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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