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인 추사 김정희 작품 세한도를 국민의 품에 안겼던 고서화 수집가 손창근 씨가 11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손 씨는 노년에 대한민국과 박물관, 대학에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문화유산과 막대한 재산을 기부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아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조선 회화사의 걸작 세한도도 그중 하나였다. 세상에 드러나는 걸 오랫동안 꺼려 ‘얼굴 없는 기부왕’으로 불렸던 그는 마지막 가는 길도 한결같았다. 유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 기부했던 기관에도 부고를 전하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고인의 기부는 명예욕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50여 년을 자식처럼 가꾼 경기 용인의 1000억 원대 임야 200만 평을 2012년 산림청에 기부할 때 사진 한 장 노출하지 않았다. 2017년 KAIST에 50억 원 상당의 건물과 1억 원을 쾌척했을 때도 설득 끝에 공개된 건 뒷모습뿐이었다. 그가 대중 앞에서 소회를 밝힌 건 2018년 11월 추사의 불이선란도와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 등 문화유산 304점을 중앙박물관에 기증했을 때뿐이다. 고인은 당시 “‘손 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 달라.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남겼던 세한도도 1년 2개월 만에 아무 조건 없이 내놨다.
물욕엔 초연했다. 개발 유혹이 끊이지 않던 용인 임야를 기부할 당시 그는 “매각하면 산림이 훼손될 우려가 커 결심했다”고 했다. 2008년 중앙박물관에 연구기금 1억 원을 건넬 때도 “갑자기 돈이 생겼다”며 기부했다고 한다. 기부는 내림이었고, 가족의 지지 속에 이뤄졌다. 개성상인 출신으로 월남해 고인과 함께 사업체를 경영했던 부친 손세기 씨 역시 서강대에 귀중 고서화 200점을 기증한 바 있다. 고인의 자식들도 임야 등의 기부에 선뜻 동의했다고 한다.
돈 앞에선 인정사정이 없는 세태 속에서 조용하면서 단호했던 고인의 기부는 더욱 빛난다. 검소하게 생활했던 그는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라며 담백하게 기부 동기를 밝혔다. 시끌벅적한 기념식엔 손사래를 쳤고, 금관문화훈장을 받을 때도 자녀들이 대신 참석하도록 했다. 고인의 자취가 고요한 한겨울 풍경 속 의연한 세한도 속 소나무의 자태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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