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기의 이혼 판결’서 나온 황당한 오류와 수정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8일 23시 24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진행한 재판부가 판결문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발생했다. 재판부는 극히 이례적으로 상세한 설명자료까지 배포했다. 재계 2위 그룹의 경영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재판에서 있어선 안 될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고치면서도 ‘재산의 35%인 1조3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는 결론은 그대로 유지했다.

문제가 된 건 SK㈜의 전신인 대한텔레콤 주가를 계산한 부분이다. 당초 재판부는 최 회장이 대한텔레콤 주식을 1994년 취득할 때,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1998년 타계했을 때, 2009년 이름을 바꿔 SK C&C로 상장할 때의 주가를 비교해 선대회장 기여분은 12.5배, 최 회장 기여는 355배라고 봤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1998년 대한텔레콤 주당 가치를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착각했다. 이를 바로잡으면 선대회장 기여분은 125배로 늘고, 최 회장 기여는 35.5배로 준다. 이에 따라 최 회장 재산 중 상속 등으로 인한 ‘특유재산’이 늘어 노 관장에게 돌아갈 분할액은 줄어야 한다는 게 최 회장 측 논리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어제 내놓은 설명자료에서 “판결문 일부 수정이 있었더라도 재산 분할 비율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최종현 회장이 형성한 재산에도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기여를 했기 때문에 달라질 게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판결에서 2009년까지를 기여도 평가 시점으로 봤던 것을 올해 4월로 바꿔 선대회장과 최 회장 기여를 각각 125배, 160배라고 다시 계산해 내놨다. 최 회장 측 기여분이 선대회장보다 여전히 큰 만큼 판결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재판부가 판결문에 없던 내용까지 제시하며 판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최 회장 측은 재판부가 최 회장 부부의 실질적 혼인관계가 2019년 파탄 났다고 보면서도 산정 시점을 올해까지 연장한 걸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법리가 제대로 적용됐는지 등만 따지지만 원심 판결에서 오류가 발생한 만큼 사실관계까지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30여 년 전 조성된 정치 비자금이 SK 측에 실제 유입됐는지, 불법 비자금을 그대로 인정해 그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 분할을 받는 게 타당한지, 공익적으로 환수할 방법은 없는지 따져볼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최태원#노소영#이혼판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