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진행한 재판부가 판결문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발생했다. 재판부는 극히 이례적으로 상세한 설명자료까지 배포했다. 재계 2위 그룹의 경영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재판에서 있어선 안 될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고치면서도 ‘재산의 35%인 1조3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는 결론은 그대로 유지했다.
문제가 된 건 SK㈜의 전신인 대한텔레콤 주가를 계산한 부분이다. 당초 재판부는 최 회장이 대한텔레콤 주식을 1994년 취득할 때,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1998년 타계했을 때, 2009년 이름을 바꿔 SK C&C로 상장할 때의 주가를 비교해 선대회장 기여분은 12.5배, 최 회장 기여는 355배라고 봤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1998년 대한텔레콤 주당 가치를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착각했다. 이를 바로잡으면 선대회장 기여분은 125배로 늘고, 최 회장 기여는 35.5배로 준다. 이에 따라 최 회장 재산 중 상속 등으로 인한 ‘특유재산’이 늘어 노 관장에게 돌아갈 분할액은 줄어야 한다는 게 최 회장 측 논리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어제 내놓은 설명자료에서 “판결문 일부 수정이 있었더라도 재산 분할 비율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최종현 회장이 형성한 재산에도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기여를 했기 때문에 달라질 게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판결에서 2009년까지를 기여도 평가 시점으로 봤던 것을 올해 4월로 바꿔 선대회장과 최 회장 기여를 각각 125배, 160배라고 다시 계산해 내놨다. 최 회장 측 기여분이 선대회장보다 여전히 큰 만큼 판결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재판부가 판결문에 없던 내용까지 제시하며 판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최 회장 측은 재판부가 최 회장 부부의 실질적 혼인관계가 2019년 파탄 났다고 보면서도 산정 시점을 올해까지 연장한 걸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법리가 제대로 적용됐는지 등만 따지지만 원심 판결에서 오류가 발생한 만큼 사실관계까지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30여 년 전 조성된 정치 비자금이 SK 측에 실제 유입됐는지, 불법 비자금을 그대로 인정해 그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 분할을 받는 게 타당한지, 공익적으로 환수할 방법은 없는지 따져볼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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