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식주 물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6배 더 비싸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이 크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한은이 18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류·신발 물가는 OECD 평균에 비해 61%, 식료품 물가는 56% 더 비쌌다. 주거비는 23% 높은 수준이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 두 달 연속 2%대로 낮아지며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확인된 셈이다.
세부 품목별로 보면 한국의 물가 수준은 더 심각하다. 사과가 OECD 평균보다 세 배 가까이 비싼 것을 비롯해 감자, 돼지고기, 티셔츠, 남성 정장 등이 일제히 두 배를 넘었다. 국내 필수소비재 물가 상당수가 최상위권이어서 저소득 가구와 고령층 등 취약계층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주요국 대비 의식주 물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식료품만 봐도 1990년엔 OECD 평균보다 1.19배 비쌌지만 지난해는 1.56배 높았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전기·대중교통 등의 공공요금이 같은 기간 OECD 평균의 0.9배에서 0.7배로 낮아진 것과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이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국내 생활비 수준이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이 누적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농업 생산성과 과일·채소의 수입 개방도가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농산물·의류 유통시장 또한 고비용 구조로 굳어지면서 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농산물 소비자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한다. 이상기후가 물가 전반을 밀어 올리는 기후플레이션도 고착화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한은의 지적대로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구조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국내 식료품·의류 가격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지면 가계 소비 여력이 7% 늘어난다고 한다. 농가 생산성을 높이는 농업 구조 개선과 유통 구조 개혁 등을 서두르지 않으면 물가 잡기도, 소비 활성화도 어렵다는 얘기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이 최근 “금리 인하 환경이 조성됐다”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는데, 섣부른 통화정책 전환은 물가는 물론이고 꿈틀대는 가계 빚과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정부는 할인 지원, 세금 감면 같은 미봉책만 내놓지 말고 구조 개선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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