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 인사이트]값싼 인스턴트 패션의 오명 ‘기후 빌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0일 2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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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패션’의 시대다. 가장 잘 알려진 인스턴트 패션 기업은 중국의 쉬인으로 그 규모가 H&M보다 크고 자라와 비슷하다. 인스턴트 패션의 등장은 속도, 경제성, 폐기를 우선하는 패션업계의 사업 모델이 정점을 찍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속도를 앞세운 패션 브랜드라는 개념은 낯설지 않다. 자라는 패스트 패션을 개척한 최초의 브랜드다. ‘인스턴트’라는 딱지가 붙은 쉬인은 자라의 속도를 우습게 만든다. 자라가 연간 출시하는 새로운 제품은 약 3만5000가지인데 쉬인은 지난 1년 동안 130만 개의 신제품을 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이너 250명과 협력 업체들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쇼핑 사이트 알고리즘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을 파악하고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를 쉼 없이 개발한다.

또한 쉬인의 제품은 H&M보다 평균 50% 더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쉬인이 9달러짜리 드레스를 판매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면보다 훨씬 저렴한 폴리에스터 소재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쉬인의 의류 중 약 3분의 2가 폴리에스터로 제작된다. 자라와 H&M의 폴리에스터 사용률은 각각 27%와 21%에 불과하다.

이런 기업은 신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구글에 막대한 광고 비용을 쓴다. 쉬인과 테무의 광고비 지출이 메타의 최근 매출 증가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쉬인 관련 영상을 틱톡에 게시하는 인플루언서도 적지 않다. 지난해 1만3000명 이상의 인플루언서가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쉬인은 틱톡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소비자들은 인스턴트 패션 모델의 부작용도 인지해야 한다. 쉬인이 경쟁 업체의 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할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쉬인은 현재 비상장 기업이며 재무제표나 공급업체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유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인스턴트 패션업계, 특히 중국의 외주 파트너 공장의 노동 관행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 언론은 쉬인과 계약한 공장 직원들이 하루 최장 18시간을 일하고 의류 한 벌당 4센트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으로 배송한 쉬인 의류 중 일부는 중국 신장 지역의 면화로 만들어져 미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스턴트 패션의 인기는 플라스틱 사용의 급증을 불러왔다. 합성섬유는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플라스틱 생산에는 막대한 탄소가 배출된다. 플라스틱 의류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수로로 흘러 들어가 식품 공급원으로 유입되기도 한다. 최근 그린피스의 조사에 따르면 쉬인 제품 중 15%에서 유럽연합(EU)의 규제 기준을 위반하는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값싼 합성소재 신발과 셔츠가 분해되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배출되고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쉬인이 올해 11월 상장을 목표로 비밀리에 기업공개를 신청했다. 쉬인은 미디어와의 소통을 늘리고 작년에는 미국 내 로비 활동에 300만 달러를 지출하는 등 외부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비정부기구(NGO)와의 파트너십을 통한 신뢰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한다고 해서 인스턴트 패션이 환경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쉬인은 2021년 대비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5%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2022년만 해도 전년 대비 52% 증가한 900만 t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인스턴트 패션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패션업계는 규제 당국, 특히 EU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다. 시대정신이 바뀌고 소비자의 자각이 높아져야 하며 과소비가 둔해져야 한다. 속도와 과잉의 한계에 도달한 산업의 해로운 영향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 또한 마련돼야 한다.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디지털 아티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인스턴트 패션의 대가’를 요약한 것입니다.



케네스 퍼커 터프츠대 교수×팀버랜드 전 최고운영책임자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인스턴트#패션#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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