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가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때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에 그친 이유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당시 금메달을 딴 개최국 러시아 대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보다 김연아가 정말로 기술 완성도가 떨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사위원들이 그렇게 평가했다는 게 중요하다.
기술 완성도가 논란이었던 건 예술적 측면에서는 김연아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NBC 방송 등 해외 언론에서도 ‘소트니코바가 기술적으로 더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김연아의 예술성을 이길 수 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평했다.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심사위원단이 판단했기 때문에.’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서 4회전 점프를 구사한 수리아 보날리(프랑스)가 1993∼1995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회 연속 은메달에 그친 이유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피겨에서 보기 드문 흑인 선수인 보날리는 “내 피부 색깔만 달랐어도 메달 색깔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날리는 원래 체조를 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몸에 큰 근육이 더 많았다.
보날리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1998 나가노 대회를 앞두고 발목까지 다쳤다. 그 바람에 4회전은커녕 3회전 점프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프로그램 구성상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점프는 ‘트리플 러츠’였지만 보날리는 공중에서 뒤로 360도를 도는 ‘백플립’을 선택해 성공시켰다.
백플립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1976년부터 금지하고 있던 기술이다. 성공해도 2점 감점이었다. 쇼트프로그램 때 6위였던 보날리는 결국 10위로 대회를 마쳤다. 보날리는 “‘이번에는 심사위원들이 마음에 들어 할까?’라는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면서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물론 심사위원들은 빼고 말이다”라며 웃었다. 그러고는 은퇴를 선언했다.
어떤 선수의 연기가 더욱 예술적인지는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흔히 ‘예술점수’라고 부르는 구성점수(PCS)에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술 완성도를 따지는 수행점수(GOE) 역시 심판 재량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ISU가 너무 보수적이라는 데 있었다. 여자 싱글 심사 기준이 ‘전형적인 여성미’라는 건 알려진 이야기. 테리 쿠비츠카(미국)가 1976 인스브루크 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백플립을 처음 구사하자 ISU는 ‘쇼 무대에나 어울린다’며 이를 금지시켰다. 유럽 출신이 다수인 심사위원들 눈에 ‘우아하게’ 보이지 않으면 모두 배척했던 것이다.
ISU는 14일(현지 시간) 열린 올해 총회 때가 되어서야 ‘피겨를 대중화하고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백플립 같은 공중제비를 금지 기술 목록에서 제외했다. ISU 설립 130년 만에 처음으로 비유럽 출신 회장이 취임한 뒤 일어난 변화다. 앞으로 피겨가 더욱 열린, 그래서 보날리 같은 ‘비주류’에게도 더욱 공정한 종목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