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가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타방은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고 합의했다. 북한이 어제 공개한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제4조의 내용이다. 아울러 새 조약에는 직접적 위협이 조성될 경우에도 곧바로 협상 채널을 가동하고, 방위력 강화를 위한 공동 조치들을 제도화하며, 우주·생물·원자력 등 과학기술 협력과 공동 연구를 장려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제 서명한 새 조약은 과거 냉전 시절 북한과 옛 소련 간 조약의 ‘자동 군사 개입’으로 해석할 만한 내용이어서 1996년 폐기된 양국 동맹이 28년 만에 복원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조약 4조는 1961년 체결된 북-소 조약의 1조에 ‘유엔헌장 제51조, 조선과 러시아 법에 준해’라는 대목만 삽입했을 뿐 그대로다. 여기에 ‘위협 조성 시 즉시 협상’ 같은 조항도 추가했다. 그 내용상으론 한미 상호방위조약 수준을 넘는 동맹 관계를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조약 내용만으로 동맹의 복원이라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김정은이 ‘동맹 관계’를 강조했지만 푸틴은 ‘질적 격상’만을 얘기했다. 다만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왕따국가 간에 이해가 맞아떨어진 데 따른 편의적 의기 투합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당장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탄약과 미사일이 필요하고,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첨단 군사기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러가 신냉전 기류를 타고 상호 군사협력을 구체화할 경우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 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양국은 앞으로 반미, 반서방 동맹을 내건 연합 군사훈련 같은 도발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 나아가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북한이 무기 지원을 넘어 병력을 파견하거나, 한반도 위기 시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러의 위험한 결탁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어제 ‘엄중하고 단호한 대응’을 강조했지만, 한미동맹 강화와 국제적 공동 대응 같은 뻔한 맞대응으론 부족하다. 최근 한-러 간 상호 금지선 준수를 통한 안정적 관계 관리를 자신해 온 정부다.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레버리지(지렛대)를 적극 활용해 압박하는 한편 한중 관계에서 진영 대결의 틈새를 찾아내는 등 북-러가 위험한 선을 넘지 않도록 중층적 외교를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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