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어울려야 하는 관계인데 어울리기 부담스러운 상황, 그래도 결국 어울리려 할 것이다.”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정부 관계자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한 얘기다. 이 관계자는 최근 북-러 관계를 지켜보는 중국의 고민과 속내를 이렇게 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새 조약을 체결했다. 거기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까지 넣었다. 28년 만에 이 조항을 부활시키며 과거 냉전 당시 혈맹 수준으로 관계를 끌어올렸다.
사실 냉전 시대 이후 북한과 함께 타는 자동차의 운전석은 대부분 중국이 꿰차고 있었다. 큰형 중국이 운전하면 동승한 동생 북한은 가끔 반항했지만 대체로 따라갔다. 중국은 그런 북한에 먹을 것도 주고 입을 것도 주면서 토닥였다.
그랬던 중국 입장에선 김정은과 푸틴의 이 갑작스러운 ‘브로맨스’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운전자를 자처하고, 북한이 흔쾌히 웃으며 따라가는 지금 상황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런 중국의 불안한 눈길을 즐기듯 19일 정상회담 직후 이동할 땐 방문객인 푸틴이 운전대를 잡고, 김정은은 조수석에 앉았다. 푸틴이 선물한 ‘러시아판 롤스로이스’ 아우루스 리무진을 타고.
그럼에도 중국은 꾹 참고 있다. 푸틴이 평양에 간 날 우리와 서울에서 외교안보대화를 갖고 “북-러 교류가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꼬집어 이례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 이상 공개적으로 불쾌함을 표출하진 않았다. 북한을 손절할 수 없고, 어울리긴 해야 해서다.
중국이 북한을 곁에 두는 건 ‘기브 앤드 테이크’ 개념은 아니다. 자원, 인력 등 뭔가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란 얘기다. 북한엔 중국과의 교역이 생존을 좌우할 규모일지 몰라도 중국 입장에선 안 해도 그만인 수준이다.
그보다 중국은 북한의 안보·전략적 가치를 높게 본다. 배짱 좋게 핵보유국 지위까지 굳히려는 ‘깡패 국가’ 북한을 다독거릴 사실상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란 타이틀 자체가 중국엔 의미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시원하게 북-러와 손잡고 다시 운전석을 꿰차면 되지 않을까. 중국 입장에선 그 역시 부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푸틴, ‘오물 풍선’ 테러 등 막장 도발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김정은과 어울리기엔 시진핑 주석만 잃을 게 너무 많다. 중국이 그동안 겉으론 러시아 지지 의사를 나타내면서도 뒤론 무기 지원을 하지 않으며 미묘한 줄타기를 해 온 것도 그래서다. 북한처럼 포탄을 퍼주는 자체가 중국엔 ‘레드 라인’을 넘어선 행위다.
그래도 결국 중국은 일정 선을 긋되 북-러와 어울리려 할 것이다. 한반도 이슈에서 중국이 가장 애를 쓴 부분은 언제나 우군 확보였다. 한미일 공조가 강화된 지금, 김정은·푸틴과도 등 돌려 완전 고립되는 상황은 중국 입장에선 가장 피하고 싶은 지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미중 패권 경쟁을 의식해 ‘핵 확장’ 정책까지 시사했다. 미국과의 갈등이 수습은커녕 증폭 일변도로 가는 상황 역시 중국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그럴수록 중국은 그게 ‘불량 국가’일지라도 비빌 언덕을 뒤에 두고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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