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바이든-78세 트럼프 메모장 하나 들고 90분 토론[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3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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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최초의 TV 토론은 19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사이에 열렸다. 케네디가 젊음으로 어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케네디 43세, 닉슨 47세로 두 사람의 나이 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40대 후보 간에 시작된 대선 TV 토론이 어느새 80세 안팎의 후보들 간 토론이 됐다.

▷올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는 82세,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이는 78세다. 두 사람이 사흘 뒤인 27일 첫 TV 토론을 벌인다. CNN방송이 진행하는 토론에서는 메모장과 펜, 물 한 병이 주어진다. 90분간의 토론 중간에 광고 시간이 두 번 있으나 그때도 캠프 관계자와 접촉할 수 없다. 둘의 국정 이해도나 순발력을 적나라하게 비교해 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바이든과 트럼프를 빼면 미국 대선에서 최고령 후보는 1984년 재선에 도전한 당시 73세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상대편 민주당 후보는 56세의 월터 먼데일이었다. 두 사람이 TV 토론에서 나이를 두고 나눈 유명한 얘기가 있다. 먼데일이 “대통령의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레이건은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며 거꾸로 된 듯한 대답을 했다. 먼데일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레이건은 “당신이 젊고 경험이 없는 걸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한 역공을 펼쳤다. 미국 전체의 TV 앞이 웃음바다가 됐고 먼데일은 패배했다.

▷젊음만이 매력이 아니라 노련함도 매력이라고 호소할 수 있는 것도 평균 기대수명보다 적을 때 얘기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둘 다 오늘날 미국의 평균 기대수명인 77세를 넘겼다. 평균 기대수명을 넘긴 후보들이 기억력 하나만 갖고 토론을 벌이게 되는 상황이 흥미롭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한 유세 현장에서는 30초 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역대 TV 토론이 모두 달랑 메모장 하나 갖고 했지만 이번에 이 사실이 더 주목받는 것은 두 사람이 빚을지 모르는 실수 때문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대중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뛰어난 연설가다. 그러나 프롬프트 의존도도 높다. 할 말을 잊는 불상사는 없길 바란다. 이들에게 통계 수치의 정확성을 따지는 건 젊은 후보들이나 하는 유치한 것일 수 있다. 주로 식견을 다투는 토론이 되겠지만 80세 안팎의 후보들의 젊은 후보들 못지않은 열띤 토론을 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멋진 장면이 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바이든#트럼프#90분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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