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의료원의 적자는 379억 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금 227억 원이 투입됐음에도 적자였다. 부산의료원도 적자 178억 원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 지급했던 손실보상금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진료 실적이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지난해 지방의료원 35곳 중 33곳이 적자로 적자액 합계는 3107억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료원 신축·증설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시와 인천시 등은 제2의료원을, 부산시는 서부산의료원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시와 울산시도 지방의료원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의료 안전망을 더 꼼꼼하고 튼실하게 만들겠다는 기본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방의료원은 “코로나19 환자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병원으로 보낸 환자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환자들이 지방의료원을 선호하지 않는 것이다.
지방의료원을 하나 신축하려면 비용은 얼마나 들까. 병원 하나를 짓는 데 민간 병원의 경우 800∼1000개 병상 기준으로 500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인천시 제2의료원 사업비는 4272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운 뒤 의료기기 성능 개선, 유지 보수 등을 위한 꾸준한 투자도 이어져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매년 수십억∼수백억 원의 예산을 지방의료원에 지원하고 있지만 의료진 채용마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강원 영월의료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지난해 11월 이후 10번이나 재공고를 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명을 채용하지 못해 3개월 이상 야간 진료를 중단했다.
해법은 없을까. 먼저 지방의료원에 제대로 투자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신 의료기기 등을 대폭 늘리고 우수 의료진을 대거 확보한다면 환자들도 돌아올 수 있다. 다만 기존 대형 병원 브랜드를 단기간에 따라가는 건 쉽지 않으며 의료진 확보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과제다. 일부 지방의료원의 경우 지금도 의사에게 연봉으로 5억∼6억 원을 주고 있다. 정부는 “지역의료를 강화하고 지방 공공병원을 수도권 대형 병원 수준으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이 구상도 지방의료원 대신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 위주다.
다들 대형 병원으로 가다 보니 지방의료원은 경제적으로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이 때문에 적자가 악화된다. 큰돈을 들여 지역의료원을 만들었는데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셈이다. 차라리 서민들에게 의료 바우처를 지급하고 민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대학병원장 출신의 한 기관장은 최근 고위공직자에게 “정부가 공공의료를 살리려면 정책 책임자인 장차관, 국회의원, 지자체장부터 지방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기관장은 “자신들도 지방의료원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왜 애꿎은 국민들에게만 대형 병원에 몰린다고 지적하느냐”고도 했다.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고 정작 지방의료는 살리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이라도 바뀌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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