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무비홀릭]춘호가 선영과 뺨을 비벼대며 화면 밖으로 사라진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4일 23시 06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미칠 듯이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담 너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영화사 ‘찬란’ 제공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미칠 듯이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담 너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영화사 ‘찬란’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1] 대학교수의 부인이 옆집 ‘제비’ 청년과 바람난다는 (지금은 동네 개도 관심 없을 얘기지만) 당시로선 파격적 불륜을 담은 영화 ‘자유부인’(1956년)의 클라이맥스를 소개할게요. 춤꾼 춘호가 “춤을 가르쳐 주겠다”며 선영을 자취방으로 유인해요. LP 레코드의 끈적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선영과 춤을 당기던 춘호가 정색하며 말해요. “마담.” 그러자 선영은 다 알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하며 되물어요. “왜 이러는 거야?” 그러자 춘호는 마침표를 찍어요. “알라뷰(아이 러브 유). 마담.” 이윽고 춘호는 “오늘 저녁엔 저를 마음대로 이용해 주십시오”라는 살인 멘트를 날리면서 선영의 뺨에 자기 볼을 수세미로 설거지하듯 비벼요. 서로를 품은 둘은 화면 왼쪽 아래로 서서히 쓰러지며 사라지지요. 6·25전쟁이 끝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당시 관객들은 이 장면에 미쳐 버리는 줄 알았어요. 스크린 밖 안 보이는 곳에서 춘호가 각종 신기술로 ‘빌드업’을 하면서 선영을 지옥의 황홀경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 자꾸만 상상되었기 때문이지요.

맞아요. 때론 안 보여주는 게 더 보여주는 경우가 있어요. 앨프리드 히치콕의 ‘사이코’(1960년) 속 샤워실 살인이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로 무서운 영화 속 살인’으로 손꼽히는 까닭도 ‘보여주지 않기’ 전략 덕분이었어요. 히치콕이 8대의 카메라로 7일간 찍어 70개 컷을 얻어낸 뒤 컷과 컷을 촘촘히 이어 붙여 구성한 이 45초의 장면은 금발 미녀가 즐겁게 샤워를 하다가 돌연 식칼을 든 노파에게 난자당해 죽는 유명한 장면이에요. 놀랍게도 이 장면엔 칼이 여자의 몸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은 단 한 순간도 안 나와요. 식칼을 치켜든 노파의 모습과 칼에 찔려 ‘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여자의 일그러진 얼굴만 계속 교차해 보여줄 뿐이지요. 칼날이 몸속을 파고드는 순간을 관객이 스스로 상상하도록 만듦으로써 체감 공포를 극대화하려는 히치콕의 역발상이었어요.

할리우드 저예산 괴수 영화 ‘클로버필드’(2008년)가 제작비의 10배 이상을 벌어들인 이유도 ‘안 보여주기’ 전략이었어요. 캠코더로 파티를 촬영하는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타났다. 그래서 캠코더로 괴물을 찍으면서 뒤쫓는다. 이게 80분짜리 이 영화의 내용 전부예요. 황당하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친 듯이 흔들리는 캠코더에 보일 듯 말 듯 거칠게 찍힌 괴수의 형상만 감질나게 보여줘요. 덕분에 컴퓨터그래픽에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고, 감독의 노림수에 코가 꿰인 관객들은 ‘괴물의 본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괴수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를 열심히 생각하다가 영화가 끝나 버리지요.

[2] 그런데, 이런 안 보여주기 기술을 예술의 탁월한 경지로 끌어올린 영화를 얼마 전 보았어요. 영국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인데, 작년 칸영화제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를 받았어요. 칸 수상작이란 말에 지레 겁먹지 말아요. 생각보다 안 졸려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어난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이 영화는, 정말 놀라워요. 처음부터 끝까지 아우슈비츠가 1초도 안 나오거든요. 대신 영화는 아우슈비츠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수용소장의 사택과 그 정원만 주야장천 보여줘요. 수용소장의 아내가 해바라기와 각종 허브로 꾸미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정원과 이 정원을 낙원처럼 즐기면서 해맑게 자라나는 자녀들의 모습이 러닝 타임 105분을 채우지요. 간혹 담 너머로 굴뚝을 통해 솟아나는 잿빛 연기(유대인들의 시신이 소각되면서 발생하는)와 더불어 저 멀리 들릴 듯 말 듯 아련히 들려오는 ‘아아아아악’ 하는 수용소 내 집단적 비명만이 봄바람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가요.

[3]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렇듯 시각 혹은 시점에서 착안한 예술적 성취도 놀랍지만, 선과 악은 가장 멀리 떨어진 대척점에 위치한 게 아니라 서로 뺨을 맞댄 채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뛰어나요. 생각해 보세요. 우린 이미 천국과 지옥이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알고 보면 섬뜩한 용어들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잖아요? ‘교제폭력’ ‘잔혹동화’부터 ‘살인의 추억’ ‘농촌 스릴러’까지 말이에요. 심지어 요즘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깃든 ‘풍선’이란 상징어마저 ‘오물풍선’이란 신조어로 지저분하게 재탄생했어요. 맞아요. 정치만 봐도 그래요. 하루하루 악의 평범성에 길들여지는 지금의 우리야말로 호러 영화 속 어떤 희생자보다 더 가여운 것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 맘대로 해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영화#선과 악#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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