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친구는 없다’ vs 니체 ‘적은 없다’[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4일 2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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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주제 중 하나는 우정이다. 친구들 간의 우애를 뜻하는 필리아(philia)는 성적 사랑을 나타내는 에로스(er ̄os), 환대와 호의를 뜻하는 아가페(agap ̄e)와 구분된다.

philia는 반대말인 적과 대비되면서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정의란 친구를 이롭게 하고 적을 해롭게 하는 데 발휘하는 유능함’이다. 따라서 단순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정치적 행위에서 적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동지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유익함(이익), 즐거움(쾌락), 선(덕)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유익함’을 나누는 관계다. 사업처럼 서로 이익이 될 때 유지되는 돈독한 사이를 뜻한다. 둘째, ‘즐거움’을 함께 추구하는 관계다. 취미가 같다면 함께할 때 즐거움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우정은 보통 이러한 두 가지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긴 우정은 셋째, ‘선’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첫째, 둘째 우정이 부차적인 것이라면 셋째 우정이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춘 것이다. 우리는 친구와 모든 종류의 기쁨, 슬픔을 함께하면서 동시에 상호 경쟁을 통해 지적이고 도덕적으로 자신을 완성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우정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완전한 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은 끊임없는 덕의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인간적 가치다. 따라서 우정을 통해 성장하고 고귀한 덕을 실천하면서 완전함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우정은 타산적,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인 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한마디로 친구란 나와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생각이 같고 늘 친숙한 사람으로 남아 영원한 동지가 되며 곁에 두고 싶은 사람만이 친구로 남아 삶의 일부가 된다. 우정이야말로 행복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다.

반전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기 전 ‘오, 나의 친구들이여, 친구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전기 작가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이라고 전해진다. 다만 정작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데리다(J Derrida)는 ‘우정의 정치학’에서 전통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던 ‘적과 동지’의 개념이 어떻게 해체되는지 분석한다. 니체가 앞서 그의 작품에서 바보의 입을 빌려 ‘적은 없다’고 하는데 이를 참고한다. ‘친구는 없다’는 주장과 ‘적은 없다’는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맞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오늘날 자신의 생각과 같은 사람만을 ‘친구’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적’으로 증오하는 현실을 보면 ‘적이 없다’는 니체의 말에 더 공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줄이기 위해서는 늘 같음만을 추구하기보다 차이에 대한 관용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니체#우정#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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