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오보를 내면 ‘바로잡습니다’ 같은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 초년 기자 시절 사람 이름을 잘못 써 ‘바로잡습니다’를 냈을 때 종일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금도 이름과 숫자 등은 절대 틀리지 않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사도 판결문을 잘못 쓰면 경정(更正·수정) 결정을 통해 수정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잘못된 계산이나 기재’가 확인될 경우 주문(主文·결론)도 수정할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도 오류가 발견돼 한 차례 수정됐다. 하지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 원을 재산분할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문은 바뀌지 않았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선고 당시 SK㈜의 모태인 대한텔레콤의 1998년 5월 주식 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판결문에 적었다. 최 회장 측이 “100원이 아니라 1000원”이라고 반발하자 재판부는 이를 수용해 17일 직권으로 판결문을 수정했다. 이에 맞춰 재판부는 최 회장이 기업 가치를 2009년 11월까지 355배 키웠다고 판단했던 부분도 35.6배로 바로잡았다. SK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최종현 선대회장(125배)이 최 회장(35.6배)보다 많은 것으로 역전된 것이다.
주식 가치와 기여도를 잘못 계산한 만큼 재산분할금도 다시 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확산되자 재판부는 18일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2심 변론 종결 시점인 올해 4월 16일의 SK㈜ 주식 가치(16만 원)와 비교하면 최 회장의 기여도(160배)가 최 선대회장(125배)보다 크기 때문에 결론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세기의 이혼소송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판결문을 고친 것도 이례적인데, 재판부가 설명자료까지 배포한 것은 더 이례적이었다. 판결 취지를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모습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없던 내용을 설명자료에 담아 판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 담긴 내용을 애초부터 판결문에 자세히 담았다면, 1000원을 100원으로 잘못 계산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지진 않았을 것 같다.
재판부는 또 판결 경정이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란 입장도 밝혔다. 경정 자체를 이례적으로 보지 말라는 취지였다. 재판부 설명처럼 판결문 수정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사법연감 최신판에 따르면 경정 신청(민사)은 2013∼2022년 연평균 1만8462건 접수됐다. 2022년 한 해만 전국 법원에서 1만4779건이 접수돼 1만1758건이 인용됐다. 서울고법 가사2부처럼 재판부가 스스로 귀책을 인정해 직권으로 수정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판사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헌법이 3심제를 보장하고, 민사소송법이 경정 절차를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원이 매년 1만 건 넘게 ‘바로잡습니다’를 쓰는 상황도 정상적이진 않다. 특히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송이라면 판결의 정당성을 떠나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사법부가 더 이상 오류에 관대하지 않고 작은 팩트조차 틀리지 않는 판결문을 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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