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휴진을 중단하고 대한의사협회가 무기한 휴진을 철회한 데 이어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다른 의대 교수들도 휴진 카드를 접고 있다. 무기한 휴진이 왜곡된 의대 증원 정책을 바로잡지도 못하면서 환자 피해만 키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톨릭대 의대 교수들은 어제 총회를 열고 무기한 휴진을 유예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던 연세대 의대 교수들도 오늘 휴진 철회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주요 대학병원 의사들의 휴진 철회로 환자들은 한시름 덜게 됐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 4개월 넘게 이어진 의료 위기는 악화 일로에 놓여 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 1만3000명 중 복귀율은 8%도 안 된다. 수련병원들은 문을 닫을 처지고 의료진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연구도 중단된 상태다. 이대로 가면 전문의 공보의 군의관 배출이 끊겨 향후 5년간은 필수 의료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의대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내년부터 예과 1학년과 신입생 7500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받는 사태가 최소 6년을 가게 된다. 의대 증원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의료 체계와 의사 양성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 원로들의 진단이다.
의료계가 휴진 철회로 한발 물러선 만큼 정부도 사태 수습을 위한 전향적 조치를 서둘러 내놔야 한다. 의료 대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전공의들부터 병원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급선무다. 복귀한 전공의들뿐만 아니라 미복귀자들에 대한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철회해야 내심 복귀를 희망하는 전공의들이 ‘배신자’ 낙인에 대한 부담 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사직을 택하는 전공의들도 빠르게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귀 관련 기준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전공의들이 돌아와야 이들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의대생들도 복귀할 가능성이 커진다.
내년도 입시부터는 제대로 절차를 밟아 의대 정원을 조정하겠다는 입장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의대 증원은 필수 및 지방 의료 살리기의 수단임에도 ‘2000명’이 타협 불가능한 정책 목표가 되면서 사태가 꼬였다. 정부가 이제라도 의사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를 두기로 한 만큼 의사들도 합류해 합리적인 정원 정책 수립에 힘을 보태야 한다. 아울러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참여해 무모한 의대 증원 정책이 낳은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어렵게 쌓아온 의료 체계의 붕괴를 막아내는 데 전문직의 책임을 다해주기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