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방에 남는 마지막 사람 돼달라” 2인자 향한 오바마의 충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6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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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내내 사이가 좋지 못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왼쪽)과 린든 존슨 부통령(오른쪽).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임기 내내 사이가 좋지 못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왼쪽)과 린든 존슨 부통령(오른쪽).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 “The vice presidency is not worth a bucket of warm piss.”(부통령은 따뜻한 오줌 한 양동이만도 못한 자리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존 낸스 가너 부통령이 한 말입니다. 옛날에는 따뜻한 오줌을 다양한 의학적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런 오줌만도 못한 신세라고 부통령의 비애를 토로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은 행정부 권력 서열 1, 2위입니다. 그런데 관계가 미묘합니다. 대통령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반면 부통령에 대한 대접이 박합니다. 헌법부터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직무에 대해서는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술해 놓았으면서 부통령은 3개 조항이 전부입니다. 1조 3항에 상원 캐스팅보트 역할, 2조 1항에 대통령 유고 시 권력 승계, 2조 4항에 탄핵 대상이라고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얼마나 서러웠으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밑에 있던 존 애덤스 부통령은 부인에게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The most insignificant Office that ever the Invention of Man contrived or his Imagination conceived.”(인간이 용케 발명해낸,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장 하찮은 자리)

● “Veepstakes.”(부통령 도박판 선발대회)

별 볼 일 없는 부통령이 요즘 주목받는 자리가 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입니다. 요즘 미국인들 사이에서 ‘veepstakes’(비프스테이크)라는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스테이크 레스토랑 이름이 아닙니다. ‘veep’는 부통령을 말합니다. 부통령의 약자인 ‘vp’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의 ‘vip’를 합쳐 소리 나는 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stake’는 ‘sweepstake’(스위프스테이크)의 줄임말로 빗자루로 쓸어 담듯이(sweep) 도박에서 판돈(stake)을 승자 한 명이 모두 차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해 대선에 출마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개 막후에서 이뤄지는 부통령 후보 선정 작업을 공개 서바이벌 오디션 방식으로 진행해 화제입니다. 유세 때마다 부통령 후보 7, 8명을 몰고 다니며 뒤쪽에 세웁니다. 거명되면 한 명씩 무대로 나와 “내가 부통령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음에 들기 위한 충성 발언 경쟁이 치열합니다. 최종 승자는 다음 달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합니다. TV 리얼리티쇼를 진행해본 경험 덕분인지 그 재미없는 부통령직마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 “Oh, God, can you ever imagine what would happen to the country if Lyndon was president?”(세상에, 만약 린든이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상상이 돼?)

대통령이 부통령을 뽑을 때 불문율이 있습니다. 절대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미국 역사에는 대통령과 부통령의 갈등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많습니다. 동부 엘리트 출신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텍사스 카우보이 출신의 린든 존슨 부통령이 논리적 사고력이 부족하다고 싫어했습니다.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자서전에 실린 케네디 대통령의 존슨 부통령에 대한 평가입니다.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사태, 피그만 침공 사건 등 굵직한 외교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존슨 부통령을 제외했습니다. 그 서운함 때문인지 존슨 부통령은 케네디 피살 직후 에어포스원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때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삐걱거린 것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 부통령의 관계입니다. 대통령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부통령이 권력 의지를 드러낼 때입니다. 닉슨 부통령의 대권 야심이 싫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지원 유세에 한 번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방해했습니다. 닉슨 부통령의 업적을 말해 달라는 언론의 요청에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If you give me a week I might think of one.”(나에게 일주일을 주면 한 가지 생각해 낼지도 모르겠다)

● “Please be the last man in the room.”(방에서 마지막 사람이 되어 달라)

반면 대통령과 부통령의 궁합이 좋은 사례도 있습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월터 먼데일 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조지 부시 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 바이든 부통령은 전문가들이 인정한 환상의 조합입니다. 권위적이지 않은 대통령과 경험이 풍부한 부통령의 조합이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바이든 부통령을 선택할 때 당부한 말입니다. 리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마지막까지 방에 남아 직언을 하는 것이 2인자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이 명언을 마음속에 새긴 바이든 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man’을 ‘voice’로 바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똑같이 당부했습니다.

※ 매주 월요일 오전 7시 발송되는 뉴스레터 ‘정미경의 이런 영어저런 미국’에서 더욱 풍부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mickey@donga.com
#오바마#케네디#린든 존슨#트럼프#바이든#대통령#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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