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2단계 시행을 당초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두 달 늦춘다고 그제 밝혔다. 스트레스 DSR은 향후 금리가 오를 것을 감안해 미리 대출 한도를 줄이는 정책이다. 정부는 가계 빚을 억제하겠다며 2월부터 1단계로 은행 주택담보대출에 스트레스 DSR을 도입한 데 이어 다음 달부터 은행 신용대출과 제2금융권 주담대로 확대하고, 대출 한도도 추가로 더 축소할 방침이었다.
그런데 금융·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대출 규제 강화 조치를 불과 엿새 앞두고 돌연 연기한 것이다. 정부는 급전 마련이 절실한 서민·자영업자 상황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연착륙 지원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면 제2금융권 주담대 대출자의 15%가 타격을 받아 서민층에 대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 파급 효과를 몰랐다가 시행을 코앞에 두고 알았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출 규제를 두 달 미룬다고 그동안 곪아왔던 자영업자 문제나 부동산 PF 연착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서민·자영업자 부담을 걱정했다면 이들을 겨냥한 핀셋 지원 방안을 찾아야지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DSR 규제를 미루는 건 적절치 않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조치가 가뜩이나 들썩이는 가계 빚과 집값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13주 연속 올랐고, 지난주 상승률은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부동산 회복세에 힘입어 금융권 가계대출은 최근 두 달 새 10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연 2%대로 금리를 낮춘 주담대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DSR 규제 강화로 대출 열기를 식혀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오히려 역행하는 신호를 준 셈이다.
대출 한도를 수천만 원씩 줄이는 규제가 미뤄지자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두 달간 ‘대출 막차’를 타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오락가락 정책에 따른 시장의 혼란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대출 정책의 일관성,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빚내서 집 사겠다’는 수요도 잠재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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