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폴 고갱은 순수하고 원시적인 세계를 동경했다. 1891년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나기 직전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1890∼1891년·사진)을 그렸다. 화면 밖 관객을 무겁게 응시하는 화가 뒤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있다. 그는 왜 자화상에 노란 예수를 그려 넣었을까?
고갱은 아를에서 반 고흐와 싸운 뒤 퐁타방(퐁타벤)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황색의 그리스도’를 그렸다. 자화상에 등장한 예수는 바로 이 그림의 일부다. 원본과 달리 그림의 좌우가 바뀐 건 거울을 보며 그렸기 때문이다. 그림 속 예수는 퐁타방 교회에서 봤던 예수상을 모델로 했다. 실제로도 노랗게 칠해진 예수상이었다.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색은 고갱이 가장 좋아하던 색이기도 했다. 비록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타히티섬에 가서는 자신이 원하는 예술을 하며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화가가 되기 전 고갱은 몇몇 직업을 거쳐 증권거래소에서 일했다. 여윳돈으로 미술품을 수집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윤택했다. 그러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서른 중반에는 아예 전업 화가로 전향했다. 부양해야 할 자식이 다섯이나 있는 가장이라 모두가 뜯어말렸는데도 말이다. 결국 생활고로 덴마크인 아내는 자식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니까 가족에게 버림받고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을 예수의 고난에 빗댄 것이다.
예수는 고난과 구원의 상징적 인물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성자다. 고갱은 자신의 성공과 욕망을 위해 고난을 자처했다. 본인도 순수한 예술의 추구와 세속적 욕망 사이에서 고뇌했을 터. 그래선지 예수 옆에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항아리를 그려 자신의 야수 같은 성격과 고통을 표현했다. 결국 이 자화상은 성자와 야수 사이에서 고뇌하지만 끝내 승리하겠다는 화가의 선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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