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은 집무실에 놓인 부친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책장과 저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셨고…(그런) 아버지의 생각을 새기고 일하기 위해 가져다 뒀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지난 2년간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자유’나 ‘시장’의 가치와 거리가 있는 항목이 적지 않았다. 최근 이슈가 된 몇 개만 골라 열거해도 지면에 차고 넘칠 정도다.
정부는 시장의 기본원리와 기업 경영의 자유를 흔들었다. 만만한 은행과 통신사, 공기업을 쥐어짜서 요금을 못 올리게 하거나 이미 거둔 수익마저 토해내게 했다. 지난주엔 전기료를 다섯 분기째 동결해 부채가 200조 원이 넘는 한국전력의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은행들에는 이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대출 금리를 억누르고, 대규모 이자 환급과 신용 사면도 강제했다. 이런 반시장적 경영 개입은 ‘조금 무리해서 빚을 내도 결국 탕감해 준다’는 신호를 줘서 가계빚 급증을 부채질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을 제약할 게 뻔하지만 어찌 됐든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보수정부에서 反시장 정책 쏟아져
소비자에게선 선택의 자유를 뺏었다. 고물가에 신음하는 국민들은 발품을 팔아 해외에서 저렴한 상품을 직접 구매해 왔지만 ‘국민 안전’을 명목으로 이를 통째로 틀어막으려 했다. ‘금사과’, ‘금배’ 현상은 계속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은 데도 농가 눈치를 보며 과일 수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안 그래도 이익집단의 저항에 번번이 백기를 들며 타다, 로톡 같은 혁신기업의 싹을 자르는 나라에서 시장경제의 기본인 재화의 자유로운 거래까지 차단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투자의 자유를 잃었다.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팔아 수익을 거두는 공매도는 모든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투자 기법인데, 유일하게 한국만 1년 넘게 금지하려 한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증거는 없고 오히려 과도한 증시 거품을 빼는 순기능이 있지만, 1000만 개미 유권자의 심기만 살피는 대통령실은 이를 곧이들을 생각이 없다. 증시 밸류업을 한다는 정부가 도리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 역할을 한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자유와 시장의 신봉자로 스스로를 여러 차례 각인시키려 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민과 기업의 경제적 의사 결정의 자유를 제약하고 시장 기능을 위축시키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혁신 장려하는 포용적 제도 갖춰야
대통령의 책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본다. 윤 대통령은 대런 애스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필독서로 꼽은 적이 있다. 얼마 전 동아국제금융포럼 참석차 방한한 애스모글루는 이 책에서 통제와 규제, 억압보다는 혁신과 창의를 장려하는 포용적 제도를 갖춰야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같은 견지에서 ‘한국 증시는 왜 실패하는가’, ‘한국 기업의 혁신은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답도 찬찬히 연구해 보길 바란다. 시장 본연의 기능인 가격 결정에 개입하고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이 정부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인지, 애스모글루는 “한국은 군사정권 시절 관치경제 흔적이 남아 있다. 완전히 포용적인 제도 구축을 위해 갈 길이 멀다”고 일갈했다. 이 정부는 기득권 집단의 저항을 넘어 시장의 박힌 돌과 고인 물을 빼고, 소비자를 이롭게 하는 ‘자유시장경제 수호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그게 아니라면 우리 증시가 왜 다른 나라에 뒤처지는지, 엔비디아 같은 혁신기업이 왜 한국에서 안 나오는지는 따로 고민해 볼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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