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관석]밤새 쓴 연애편지 같은 대통령 PI는 곤란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6일 23시 12분


장관석 정치부 차장
장관석 정치부 차장

“대한민국의 변화가 세계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졌고, 국가 이미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대통령실이 23일 내놓은 ‘대통령실 국민제안 개설 2년, 국민의 목소리를 민생정책으로’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올해 2월 별칭 김건희법으로 불리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관련 민원 편지들이 완전히 사라져 한 통도 오지 않고 있다”고도 적었다. 보도자료에 ‘김건희법’이라고 썼다. 일부는 굵은 글씨체로 강조돼 있다.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 화두를 던져 일어난 변화가 국격 상승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대통령실은 종종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반려견 사랑을 홍보 포인트로 삼아 왔다. 이런 취향이 알려져 투르크메니스탄 정상으로부터 국견 ‘알라바이’를 선물받았다. 대통령실은 알라바이를 공수 받는 과정도 A4용지 4페이지에 이르는 상세한 보도자료에 사진을 담아 제공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동물 생명과 동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전했던 만큼, 알라바이가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다할 것”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 코멘트도 등장한다. 대통령실 대변인이 순방 중 기자들을 상대로 현안을 직접 설명한 사례도 알라바이 이야기가 유일했다.

검사 재직 시절부터 윤 대통령의 반려견 사랑은 유명했다. 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 반려견을 위해 직접 개를 위한 보양식을 만들어 건강을 회복시키려 힘쓸 정도로 지극했다. 김 여사의 반려견 사랑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 부부의 반려견 사랑은 친근감 형성에 더해 이들이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갖췄음을 자연스럽게 부각할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인프라 확대라는 중앙아시아 정상 외교의 본질보다 눈길이 더 갈 수도 있는 만큼 홍보 시기와 수위, 방법을 신중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반려견 사랑에 개 식용 금지법을 얹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자칫 김 여사 치적 홍보 목적이라는 의심을 살 경우엔 대중이 없던 반감조차 가질 수 있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때도 김 여사 역할을 부각하는 보도자료와 서면 브리핑이 연이어 나온 터다. 국정 지지율 20%대, 고물가에 허덕이는 민생과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 세대가 도처에 있다. 대통령 PI(President Identity)에 직결되는 요소들이다.

새벽에 쓴 연애편지가 아침에 읽어보면 부끄러울 때가 있듯, 몇몇 보도자료에 보이는 상찬적 어조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국정동력과 지지율 견인이라는 예쁨을 받으려면 대통령 내외가 듣기 좋은 말보다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이 더욱 담겨야 하지 않을까. “기업이 ‘우리 제품 최고’라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항변도 있겠지만, 검찰총장 윤석열에게 기대했던 사람들이 줄어 어느덧 부정 여론이 높은 상황에 대한 메타인지적 접근 자세도 필요하다.

여권 인사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2006년 농가를 방문했을 때 주목받은 초록색 낡은 점퍼 얘기를 했다. 이 옷이 11년 전 지방 시찰 때도 입었던 옷이라는 사실이 한 ‘누리꾼’에 의해 알려져 13억 중국인에게 전파됐다. ‘공산당 관계자’ 코멘트나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면 이만큼 회자될 수 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반려견#민생정책#김건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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