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방학은 새로운 시작점이다. 위층 생명공학과 이 교수는 이번 방학에 학부생과 함께 연구를 새로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일 년에 6000만 원 정도 받던 연구비 지원이 끊겨 도통 기운이 없다.
이 교수는 실험용 개구리를 사육하고 있다. 연구비가 바닥나 개구리 굶기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새로운 개구리를 사들일 연구비가 없다는 거다. 이 교수의 연구실은 개구리 알을 통해 몸속의 이온이 어떻게 전달되고 차단되는지를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연구실이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칼슘이온 전달 채널을 밝혀내 ‘네이처’지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기초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이 원리를 이용해 혈압약을 만들기 때문이다. 심장에 칼슘이온을 차단하면 심장의 텐션이 낮아져 혈압이 낮아진다. 이 실험을 하려면 건강한 개구리 알이 필요하다. 현재 두 마리 남은 비실비실한 개구리로 앞으로 실험을 어떻게 지속할지 쉽지 않아 보인다.
연구실 옆방에는 부임한 지 2년 차 되는 교수가 있다. 신진 연구자에게 정착금 명목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연구재단 신진연구자지원 사업에서 두 번 연속 낙방했다. 이 연구비는 연구실을 셋업하고 학생들을 모아 연구를 시작하는 종잣돈 같은 돈인데, 2년째 받지 못한 것이다.
내가 외국 유학에서 돌아와 교수로 부임했을 때는 운 좋은 시절이었다. 실험실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목돈을 학교에서 지원해줬다. 이 돈으로 마련한 장비를 아직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당시는 연구재단에 연구비를 신청하면 웬만하면 받을 수 있었다. 경쟁률이 지금보다 높지 않았고, 국제 학술지에 주 저자로 발표한 논문이나 특허가 있으면 연구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률이 높아졌다. 10명이 지원하면 1명 정도만이 연구비를 받는다. 올해 2월 초, 내가 근무하는 대학만 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기초연구사업 중 중견 및 신진 연구의 신청 건수가 작년 기준 37건에서 77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중진 연구자들의 연구비 신청도 60% 이상 늘었다. 신임 교수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신진 연구자 인프라 지원 사업 신청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결과 연구비 신청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연구비 신청 서버가 다운되어 연기되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이미 예상했듯이 연구비 발표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물리학과 교수들이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 모두 탈락했다. 연구비 삭감에 관한 이야기가 먼 달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한 분야의 밑바탕을 늘리는 일을 저변 확대라고 한다. 어떤 연구가 세상에 필요할지 그 누구도 모른다. 기초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앞서가기는커녕 따라가기밖에 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늘 단단한 기초과학의 토양 위에서 새로운 연구가 탄생했다. 기초과학에 지속적이고 꾸준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지속성 없는 과학정책이 우리가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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