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법률 용어였던 ‘친족상도례’가 널리 알려진 것은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 때문이었다. 박 씨의 형이 박 씨 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을 때, 갑자기 박 씨의 아버지가 ‘박수홍의 돈은 형이 아니라 내가 썼다’며 주장하고 나서면서다. 부모는 자녀의 동의 없이 돈을 빼내도 처벌받지 않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이용해 큰아들의 처벌을 면해 주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무성했던 것. 헌법재판소가 어제 ‘친족상도례’ 조항의 적용을 중지하고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친족상도례의 대상은 두 부류다. 먼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등은 절도 사기 횡령 등의 재산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형(刑)이 저절로 면제된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범죄 액수가 많든 적든 예외가 없다. 다음으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친족은 피해자가 고소를 하는 경우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다. 이른바 ‘친고죄’다. 이 중 헌재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부분은 ‘형 면제’ 부분이다.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피해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친족상도례는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이 조항이 있었다. 대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선 친족상도례 조항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71년이 흐르는 동안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호주제는 폐지된 지 오래고, 1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
▷더구나 돈의 유혹이 커지면서 부모 자식과 형제자매의 재산을 노리는 ‘불량 가족’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번에 헌법소원 사건에도 지적장애인 조카의 돈을 빼돌린 삼촌, 노모의 예금을 횡령한 자녀와 그 배우자의 사례가 문제가 됐다. 이들은 피해자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지만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 일반인들의 법 감정이나 상식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악행이 법 조항 때문에 면죄부를 받았던 셈이다. 정부와 국회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법 개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는 1992년 친족 사이의 범죄를 기본적으로 친고죄로 규정해 처벌 가능성을 열어두는 형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친족상도례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흐지부지됐다. 가족 문제에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막는다는 친족상도례의 취지는 살려야 한다는 의견까지 감안해서 정부와 국회가 부작용을 줄일 방법을 진작 찾았어야 했다. 이제라도 법 개정을 서둘러,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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