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한애란]‘가변가격제’ 쓰나미가 바꿀 소비 풍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7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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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 기자
한애란 경제부 기자

똑같은 제품인데 어제와 오늘 판매 가격이 다르다. 기억이 틀렸나 싶어서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보면 며칠 전 더 싼 가격에 구매했다는 상품평이 나온다. 왠지 손해 보는 듯한 기분에 마음 상한다. 쿠팡·11번가·G마켓 같은 온라인 쇼핑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유통기한과 재고 상황, 경쟁업체 판매가에 따라 가격이 수시로 바뀌는 가변가격제(Dynamic Pricing)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누가 사느냐에 따라서도 가격은 달라진다. 둘이 동시에 쿠팡에서 같은 제품을 검색했는데, 제시된 가격이 달라서 어리둥절한 적 있다. 신규 고객에게만 할인쿠폰을 줬기 때문인데, 멤버십에 가입한 충성 고객은 솔직히 억울하다.


고립된 고객, 맞춤형 가격

가변가격제는 합법이다. 경영학에선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고객 선택권을 늘리는 선진적인 전략으로 여겨진다. 항공권 요금이나 호텔 숙박비는 언제 어디서 결제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게 일반적이다. 특정 시간대엔 값을 깎아주는 영화관 조조할인이나 카페의 해피아워도 비슷한 사례다.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평균 10분에 한 번 가격을 바꾸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성공 비결로 꼽힌다. 효율적인 시장에선 같은 상품엔 하나의 가격만 있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은 깨진 지 오래다.

가변가격제는 점점 확산한다. 미국 맥도널드는 매장마다 가격이 다를 뿐 아니라, 앱으로 주문하면 매장 계산대에서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다. 미국 차량 공유업체 우버와 배달플랫폼 도어대시는 고객이 몰리는 시간대엔 요금을 대폭 인상한다. 하이브는 지난해 BTS 멤버 슈가의 미국 콘서트 티켓에 가변가격제를 도입해, 350달러였던 표값이 순식간에 1000달러 넘게 치솟기도 했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서로 누가 얼마에 제품을 샀는지 알 수 없다. 고립된 고객과 데이터 분석 기술이 결합해 유연한 맞춤형 가격 시대를 탄생시켰다.


AI가 가져올 1인 1가격 시대

이론적으론 수시로 바뀌는 가격은 더 많은 소비자 효용을 가져다준다. 일부 고객이 더 높은 가격을 지급하는 대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 수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제품을 정말 원하는 사람에겐 비싸게, 덜 원하는 사람에겐 싸게 제공하는 것. 경제학 용어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하지만 가변가격제는 불편하다. ‘맞춤형 할인’은 다들 원하지만, 실제로는 ‘가격 차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비싼 가격을 지불해 손해 보는 소수에 내가 속하지 말란 법이 없다. 같은 물건에 다른 가격 지불하는 것은 공평한가. 질문은 점점 커진다.

인공지능(AI) 기술은 가변가격제를 고도화할 것이다. 완전히 개인화된 ‘1인 1가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 출근길에 앱으로 장을 보는 워킹맘에게 그 시간대에만 우유 가격을 슬쩍 올려서 제시한다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월급날 즈음엔 배달 음식료를 좀 더 높게 부른다면. 이런 맞춤형 가격 제안에 수락 또는 거절하는 소비자 경험이 쌓일수록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다.

이 게임에서 소비자는 승리할 수 있을까. 최근 속속 등장하는 ‘가격 추적 앱’을 보면 소비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쇼핑 앱의 제품별 가격 변동을 매일 추적해 지금 가격이 이전보다 얼마나 싼지, 비싼지를 그래프로 한눈에 보여준다. 역대 최저가로 살 수 있는 제품은 따로 모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정보를 전자상거래 기업 스스로 공개하면 어떨까. 과거 한 달 동안의 가격 변동 범위를 알리는 식으로 말이다. 가격이 전보다 오르거나 내린 이유까지 설명해 준다면 더 좋겠다. 점점 늘어나는 가변가격제가 소비자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건 투명성이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haru@donga.com


#가변가격제#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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