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한국 식료품 물가 수준 OECD 1위”
농식품장관 반론 제기해 건설적 물가논쟁
세계서 비교열위 농산물, 수입 비중 중요
국내공급 구조개혁 어렵다면 수입 늘려야
얼마 전 신문 기사를 통해 한국은행 연구자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사이에 흥미로운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 논쟁은 수입과 수출 중 어떤 것이 국내 식료품 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신문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짧게 언급된 내용이었지만, 국제 무역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실증 연구하는 나로서는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 논쟁의 발단은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 두 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보고서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 운영 상황 점검’이다. 6월 18일에 이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창용 총재는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률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전반적인 물가 수준 자체가 높은 것은 국내 공급 측면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과 소비자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러 소비물가 수준이 높아졌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 둔화가 있더라도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보고서는 거의 동시에 발표된 ‘우리나라 물가 수준의 특징과 시사점’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서강대 이윤수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통계지표를 사용한 결과, 우리나라 식료품 물가 수준이 OECD 국가 중 1위에 해당할 정도로 매우 높다고 밝혔다. 340여 개의 세부 품목 자료를 검토한 결과, 대부분 품목에서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이상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관계 기관인 농식품부 장관이 곧바로 두 번째 보고서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반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에 사용한 지수의 신뢰성 문제, 둘째 노동생산성 지표의 대표성 문제, 셋째 개방도 지표로서 수입 비중 사용의 적절성 문제다.
이윤수 교수는 즉각 언론을 통해 재반론을 했다. 그는 연구에 사용한 물가지수의 신뢰성에는 문제가 없으며, 농업 분야에서는 노동생산성 지표가 타당하며, 물가 수준을 추정할 때 수출 비중보다는 수입 비중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물가지수의 신뢰성을 위해 다양한 물가지수를 이중 삼중으로 검토한 사실과 국내 경제학자 중 생산성 분야 최고의 전문가 견해라는 점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재반론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세 번째 재반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이론적인 관점부터 정리해 보면, 폐쇄 시장 경제와 자유무역 시장 경제를 비교할 때 국내 시장가격과 해외시장 가격의 차이에 의해서 어떤 시장은 수입시장으로, 또 다른 시장은 수출시장으로 전환된다. 세계 시장 대비 비교우위에 있는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개방 시 수출시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비교열위에 있는 시장은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개방 시 수입시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 수입을 많이 하는 품목 시장은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외 제품을 수입하는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현재 수출을 많이 하는 품목 시장은 국내 공급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국산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론적 관점에서 거시경제학적 물가 수준과 관련된 개방도 지표는 수출 비중과 수입 비중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특정 산업의 물가 수준을 고려할 때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의 경우, 국제 통상 관점에서 보면 농업 분야는 비교열위 산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역대 모든 정부가 가능한 한 농산물 시장 개방을 제한하고 농업을 보호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농산물 물가 수준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 이 물가 수준을 반영하기 위한 적절한 개방도 지표는 농산물 수입 비중이다. 수입 비중을 통해 얼마나 많은 농산물이 해외에서 수입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논쟁의 함의는 소비물가 안정을 위한 국내 공급 측면의 구조적 개혁이 어렵다면 농산물을 비롯한 소비재 수입시장 개방도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정부에서도 여러 논란이 된 경제 이슈들이 있었다. 특히 필자가 기억하는 것은 ‘소득주도성장’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다. 이 정책들의 부당함을 지적하기 위해 경제학자로서 많은 정신적 피로감을 감내해야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물가 수준에 대한 논쟁은 매우 건설적인 것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정부 관계자들 간의 논쟁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어 합리적인 정책이 개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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