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의 가파른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어제 엔-달러 환율이 사흘 연속 160엔을 넘어섰다. 1986년 12월 이후 37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 가치의 나 홀로 독주에 1400원을 위협하던 원-달러 환율은 어제 1370원대로 떨어지는 등 널을 뛰고 있다. ‘킹달러’와 ‘초(超)엔저’의 협공 속에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위태로운 안개 속을 걷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60엔을 넘어선 것은 4월 이후 두 달 만이다. 일본 당국이 9조7000억 엔어치의 달러를 푸는 등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나섰지만 두 달 만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옅어진 영향이 컸다. 시장 일각에선 엔-달러 환율이 170엔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엔화 약세가 장기화되는 것은 한국 경제로서는 반갑지 않다.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철강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일본 관광의 증가로 여행 수지 적자도 더 커질 수 있다.
최근 들어 엔화와 원화의 동조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어 엔화 가치의 하락은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 호재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일본 등 경쟁국의 통화 가치도 함께 떨어지고 있어 수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수입 물가 상승으로 국내 소비자 물가가 오르고, 기업의 원가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이 더 크다. 최근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환율 때문에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당국이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해외 자산을 매각할 경우 미 국채 금리가 뛰는 등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확대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안 요인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한국은행을 향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것은 환율 불안을 부추길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 지금은 초엔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 정책 역량을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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