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후 죄책감… 섭식장애 이면에 숨은 심리적 문제[마음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30일 2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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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는 ‘폭식’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정말 흔히 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폭식일까? 폭식의 사전적 정의는 ‘음식을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이 먹음’이다. 그렇다면 이 지나친 많음의 기준은 객관적인 식사량인 걸까?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그렇지 않다. 폭식을 결정하는 기준은 바로 ‘감정’이다. 많이 먹었다며 그냥 후회하는 정도는 과식 혹은 잘못된 식습관 정도로 볼 수 있으나, 폭식의 경우 후회를 넘어선 심한 죄책감과 우울감, 무기력감 등이 동반된다. 그리고 폭식과 폭식 후 따라오는 감정에 일상이 큰 영향을 받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오늘 폭식하면 안 되니 친구와의 약속은 도저히 갈 수 없겠다’며 약속 직전까지 고민하다가 취소한다. 혹은 약속이 끝난 후 늦은 밤에 2시간씩 러닝머신을 뛰거나, 일부러 구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폭식은 왜 이렇게 강렬한 감정과 연결되는 걸까? 진료실에서는 섭식장애를 앓고 있거나, 질환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이 행동과 연결된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그 스트레스의 핵심은 체중 증가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다. 객관적으로 저체중임에도 식사를 제한하다 사망에까지 이르기도 하는 신경성 식욕부진증, 일반 체중 범위를 유지하지만 폭식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과도하게 운동을 하거나 구토나 설사를 일부러 유발하는 신경성 폭식증, 이 두 질환 모두 체중 증가에 대한 엄청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섭식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해 볼 수 있는데, 일단 첫 번째로 환경적 요인들이 있다. 날씬한 체형을 강조하는 다이어트 문화가 생긴 1970년대부터 섭식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다른 강박장애로 이어졌을 심리를 가진 사람들, 즉 불안 수준이 높고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완벽하게 통제할 대상이 필요한 이들에게 체중과 체형이라는 새 주제가 등장한 것이다.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더 크게 받는 여성분들에게 섭식장애가 훨씬 더 흔하게 나타난다.

물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다이어트를 시도한다고 누구나 다 섭식장애로 이어지는 것은 단연코 아니다. 타고난 생물학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이 결정적 요인들이다. 앞서 말했듯 불안 수준이 높고 예민하고 완벽주의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 어릴 적부터 타인의 신경을 많이 쓰고 평가에 예민한 사람들이 더 취약하다. 이런 분들이 어떠한 계기를 통해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지나칠 정도로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는데, 제대로 된 영양섭취가 되지 않으니 세로토닌(체온, 기억, 정서, 수면, 식욕, 기분 조절에 기여하는 신경전달물질)도 부족해지고 뇌 기능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폭식은 정말로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건강과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폭식 행동에만 집중해서는 치료가 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자존감, 자아정체성 문제, 부모와의 심리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다양하고 거대한 심리적 문제들을 다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6월 30일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22만2000명이다. 에세이 ‘어쩌다 정신과 의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섭식장애#체중#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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