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라는 기후 급소[내가 만난 명문장/조천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30일 2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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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것들은 위독하다.”

―이성복 ‘그대에게 가는 먼길’ 중


조천호 대기과학자·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대기과학자·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이성복 시인 잠언집에 나오는 말이다. “약초와 독초는 양날의 검이다. 얼마큼 쓰는가에 따라서 약도 되고 독도 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기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가 바로 그런 경우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전혀 없다면, 현재 영상 15도인 전 지구 평균기온은 영하 18도가 되었을 것이다. 자연적인 이산화탄소는 기온을 33도 상승시켜 우리가 살 수 있는 기후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우리가 살 수 없는 기후 변화를 일으킨다.

산업혁명 이전 이산화탄소는 100만 개의 공기 분자 중 약 280개였지만 현재 420개로 증가하였다.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 동안 공기 중에 남아 누적된다.

인간이 증가시킨 이산화탄소는 현재 1초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 폭발과 같은 열을 우주로 못 빠져나가게 하여 지구 평균기온을 약 1.1도 상승시켰다. 이는 공룡이 멸종한(6500만 년 전) 이후 가장 빠른 자연적인 기온 상승보다도 약 10배나 빠르다. 수천 년 걸리던 자연적인 기후 변화가 이젠 우리 생애 안에 일어난다. 이와 함께 지역에 따라 다른 기온 상승이 기후 균형을 무너뜨린다. 결국, 기후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불안정해져 변덕스럽고 혹독한 날씨가 더 자주 강하게 일어난다.

급소에 충격을 가하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급소는 생명의 중요한 맥이 흐르므로 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기후에 큰 영향을 일으키는 급소다.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기후 급소에 충격을 가한다. 이 위대한 것은 위독하다.


조천호 대기과학자·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이성복#그대에게 가는 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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