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이 선거에 패배했다면 나빠진 경제, 불통 이미지에 빠진 대통령을 패인으로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두 기준에서 비교적 성과를 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일요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크게 졌다. 그가 이끄는 중도 연합 앙상블은 제3당으로 밀릴 전망이다. 7일 시행되는 2차 결선 투표가 1차 때와 비슷하다면 극우파가 1당, 좌파 연합이 2당이 된다. 프랑스 언론은 대통령의 엘리트 이미지를 민심이반 요인으로 꼽았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마크롱의 오만하다는 이미지가 치명적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임기 초 시민들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했는데, 실직한 청년 정원사와 나눈 대화가 카메라에 잡혔다. 마크롱은 “다른 일을 찾아보라. 가령 식당 웨이터 같은…”이라고 했다. 현실적인 조언일 수 있겠지만, 정원사로서 일했던 경험은 아무래도 좋다는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대중은 상처 받았다.
▷지지율은 30%에 묶여 있지만, 업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전임 대통령들이 엄두를 못 낸 구조개혁에 매달렸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로선 ‘나는 할 수 있다. 나 아니면 누가 할까’ 싶었을 것 같다. 그는 해고를 쉽게 하는 친기업적 노동개혁을 했고, 연금개혁을 시도해 구멍난 연금재정을 메워야 하는 납세자의 부담을 줄였다. 정책 수혜자는 쉽게 잊지만, 손해를 입었다고 믿는 유권자는 표로 응징하곤 한다. 이런 표심을 마크롱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가 야당의 반대를 넘어선 것은 절충과 타협 대신 프랑스 특유의 헌법 조항을 활용한 결과였다. 대통령이 49조3항을 발동하면 법안은 국회 표결 없이 발효된다. 의회주의를 거스른다는 비판 때문에 역대 프랑스 대통령은 이 조항을 대체로 1년에 1번 정도만 쓰는 절제력을 보였다. 마크롱은 2022년 재선 후만 따져도 20번 넘게 썼다. 여소야대 속 야당은 일방주의적이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경제 지표는 좋아졌지만 지지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취임 때 9%였던 실업률이 7% 선으로 떨어지면서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6%대 물가상승률도 2%대로 안정됐다. 46세 젊은 대통령답게 메모 한 장 없이 몇 시간씩 시민들의 질문을 받았고, 부유세를 폐지할 때는 전국을 돌며 끝장 토론을 11번이나 벌였다. 이런 마크롱의 ‘진심’은 “소통 쇼” 비판에 가려졌다.
▷1992년 미국 대선 때 클린턴 후보가 들고 나온 슬로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란 말이야(Stupid, it’s economy)”였다. 그 후로 먹고사는 민생이 선거의 제1 요건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프랑스 총선에선 먹히지 않았다. 비교적 좋아진 경제나, 대국민토론을 통한 설득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마크롱에겐 엘리트주의 이미지가 악몽처럼 돌아왔다. 흠집 나기는 쉬워도 되돌리기는 지난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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