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극과 극 시나리오로 열려 있는 ‘북-러 결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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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 장기화 땐 러에 북한군 파병 가능성
종전 땐 러, 부담스러운 대북지원 중단할 수도
韓, 북-러 밀착 마뜩잖은 中과 소통 강화 필요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달 27일 북한 강순남 국방상 담화가 발표되었다. 러시아가 병합한 세바스토폴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미국산 에이태큼스 미사일로 러시아 사상자가 발생한 데 대한 비난 성명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이 맺어진 이후 국방상까지 나선 성의 표시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불패의 동맹관계”라고 평하는 북-러 관계의 미래는 여러 변수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일 것이다. 현재 러시아의 최대 관심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푸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쟁이 아닌 특수작전이라고 설명하며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국민들이 막대한 전쟁 부담을 져야 한다면 푸틴 정권은 약화될 수 있다. 북-러 동맹은 전시에 맺어진 러시아의 활로 중 하나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전시 무기 공급처이자 외교적 지원국이다. 북한의 탄환과 미사일은 물론이고 전쟁이 장기화되면 북한의 노동력, 북한군 파병까지도 필요해질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미국과 서방의 유럽 지원을 분산시키기 위해 중동과 아시아에서 추가적 안보 혼란을 조장해야 하고 이 경우 한반도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의 장기화가 푸틴 대통령에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러시아의 북한 의존도는 늘어날 것이고 러시아는 많은 문제를 안게 된다. 북한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미사일 군사기술을 넘겨주는 것은 미-러 간 화해의 가능성을 끊는 레드라인이다. 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 러시아는 유럽과 관계 재설정, 국제사회 편입을 추구해야 한다. 전시에 북한의 도움을 받기 위해 유엔의 대북 경제 제재를 하나씩 위반해 나가는 것도 부담이다. 북한을 정당한 핵무기 국가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핵 비확산은 러시아의 지속적인 정책이었기 때문에 파장은 클 것이다. 우크라이나전 종전 이후 북한이 러시아에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북-러 동맹의 지속 가능성도 미지의 영역이다.

북한은 조약을 통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경제, 기술 분야를 망라하는 포괄적 협력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작 필요로 하는 핵심 군사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북한은 러시아에 자신이 필수불가결한 동맹 상대국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많지 않다. 우크라이나전 종전 과정에서 러시아가 미국과 협상할 때, 북한의 소위 반미반제투쟁 노선에서 이탈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비대칭 동맹인 북-러 동맹에서 약소한 파트너인 북한은 러시아의 동맹 제지를 받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입장이다. 중국은 북-러 양국이 주고받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들을 제공한다. 미국과의 리더십 경쟁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북한의 도발도 전격 지원할 수 없다. 국가 주권의 원칙이나 핵 비확산의 원칙을 저버릴 때 리더십 경쟁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다. 북-중 동맹의 2조와 이번 북-러 조약의 4조가 거의 유사한 상황에서 북-러의 군사적 결탁이 북-중 관계와 오버랩되는 것도 달가운 일은 아니다. 유엔 제재를 위반하면서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를 지원하는 것처럼 중국이 북한을 도울 수는 없다. 북핵에 대비하는 한미일의 안보협력 발전도 중국에는 악재이고, 한일을 비롯한 서방과의 경제, 외교 관계도 여전히 중요하다. 미국은 북-러 조약 이후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안정을 둘러싼 중국과의 교감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중국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북-중-러가 같은 차원에서 3국 협력으로 묶이는 것이 중국의 바람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북-러 조약의 미래 리스크는 예단하기 어렵다. 모든 사태에 대비한 한국의 억제력 강화는 필수다. 북-러 조약 이후 가용한 정책 수단을 명확히 할 필요도 있다. 우크라이나 및 서방에 대한 군사지원이 한 예일 수 있다. 자체적인 군사력 증강과 한미일 협력도 중요하다. 3차 한미 핵협의그룹에서 많은 노력 끝에 도출된 공동 지침은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북-러 동맹 관계의 향후 추이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러 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과 함께 한국을 군사적 적대국으로 상정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 대한 반패권주의를 주장하지만 향후 미-러, 북-미 협상도 가능하다. 정세 추이에 따라 북-러 군사동맹 관계는 더욱 위협적으로 변할 수도 있고, 우리의 과도한 대응이 북-러 담합의 정당화 빌미를 줄 수도 있다. 대중 외교 역시 중요하다.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중 외교안보대화는 그러한 점에서 지속되어야 할 소통의 창구이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북한#러시아#북한군 파병#대북지원#동맹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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