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다섯,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한 40대 ‘워킹맘’은 ‘조선족 이모님’을 육아 도우미로 쓰고 있다. 숙식을 제공하고 한 달 300만 원을 그에게 준다. 1년이면 3600만 원, 10년이면 3억6000만 원이다. 부담이 크지만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국인 도우미는 입주 육아를 꺼리고 한 달 400만, 500만 원씩 부른다. 아이가 둘이라고 하면 연락도 없다. “아이들이 달걀프라이라도 스스로 해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나마 자신은 은행 돈을 빌려서 방 3개, 화장실 2개 딸린 아파트를 장만해 입주 ‘이모님’을 들일 수 있고, 맞벌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른 엄마들보다 형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20, 30대 여성 근로자 10명 중 8명은 한 달에 300만 원 미만을 번다. 부모 도움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면 육아가사 도우미 비용이 큰 부담이 된다. 최악의 경우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육아 고통, 워킹맘에게 책임 전가하는 사회
자녀 돌봄 부담에 짓눌린 워킹맘 사연은 직장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흔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사고다발지역’ 도로 안내판처럼 사고 위험을 잘 알고 있지만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고 떠넘기는 식이다. 사고가 잦다면 도로 설계를 바꾸거나 안전시설을 보강해 사고 자체를 구조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다발지역’은 사라지지 않는다. 워킹맘의 고통을 알면서 책임을 개인이나 기업의 몫으로 돌리면 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상황이 오죽 답답했으면 통화신용정책을 맡고 있는 중앙은행이 3월 ‘돌봄서비스 인력난과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까지 내놨다. 한은은 외국인 돌봄 도우미 확대를 제안했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처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사적 계약 형태로 외국인 도우미 공급을 늘리거나 일본 독일 영국처럼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고용허가제를 활용하되 돌봄서비스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대안이다.
한은이 논쟁의 물꼬를 텄지만, 노동계는 “이주 노동자 차별 반대”를 외치며 한은 앞으로 몰려갔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 대상으로 돌봄서비스 업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도 워킹맘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외국인 도우미 확대 사회적 합의 필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논란이라면 ‘체류 비자 신설과 사적계약을 통한 외국인 돌봄도우미 확대’ 방안이라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에게 시장을 개방한 홍콩의 경우 가사도우미 시간당 평균 임금(2797원)은 한국(1만1433원)의 4분의 1이다.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처우가 걱정이라면 홍콩처럼 고용주가 식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부담하게 할 수 있다. 불법체류가 우려되면 싱가포르 대만처럼 고용주에게 일정액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장치도 한은은 소개했다.
안 될 이유부터 찾으면 될 일도 없다. 저출산 극복과 워킹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가능한 방법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야 합의점이 보인다. 정부도 세금으로 지원하는 인센티브를 죽 늘어놓을 게 아니라 낡은 제도를 고쳐 시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개혁에 더 신경써야 한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바닥이 움직이는 나라가 등장한다. 이곳을 다스리는 ‘붉은 여왕’은 주인공 앨리스에게 “여기서는 제자리를 지키려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워킹맘 앨리스들에게 “죽어라 뛰어라”고 요구만 하는 붉은 여왕의 나라를 만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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