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역서 늘어나는 모스크
도쿄 모스크 예배 1000여 명 몰려… 외국인 근로자 늘며 무슬림도 증가
독특한 실내장식에 ‘인스타’ 성지… 견학 신청 등 다문화 명소로 주목
“우리 마을 안 돼” 차별-편견 여전… 일부선 지역민 초대 등 공존 손짓
《지난달 27일 오후 일본 도쿄 시부야. 도쿄 시민들의 쉼터인 요요기 공원에서 차로 5분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이국적인 외양의 커다란 건물이 서 있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니 화려한 아라베스크 장식과 아랍어 글씨가 새겨진 벽과 천장이 눈에 띄었다. 오후 3시 반경 스피커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지자, 20여 명이 허리를 숙이고 엎드려 경건하게 절을 올렸다. 일본에서 최대 이슬람교 사원(모스크)으로 불리는 ‘도쿄 자미(Camii)’에선 여느 이슬람 사원과 다름없는 풍경이 자연스레 펼쳐졌다.》
● 라마단엔 3000명 몰려
조용한 주택가에 있지만, 하늘로 우뚝 솟은 미너렛(첨탑)과 둥근 돔 지붕은 이곳이 이슬람교 시설임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도쿄 자미는 1938년 러시아에서 온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인 타타르인을 위한 모스크로 세워졌다. 이후 노후화로 철거됐다 2000년 튀르키예 정부 지원으로 새로 지어졌다. ‘자미’는 튀르키예어로 모스크라는 뜻이다.
1층 로비에는 일장기와 튀르키예 국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자미 측에 따르면 종교 시설이지만 튀르키예 종무청 산하 문화센터 역할도 한다. 무슬림이라면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기도할 수 있어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출신 무슬림들도 많이 찾는다. 이슬람 율법에 맞춰 가공됐거나 조리된 식품인 ‘할랄 푸드’ 전용 상점도 운영하고 있다.
자미 내부로 들어서면 이슬람권 국가에 있는 모스크를 그대로 옮겨놓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이날은 평일이라 20명 정도가 조촐하게 모였지만, 금요일 낮 예배에는 1000명이 넘게 모인다. 실내 예배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야외에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실제로 금요일 낮 취재를 요청했을 때, 자미 측은 “사람이 많이 몰려 사진 찍기 어려울 것”이라며 평일 취재를 권했다. 올 4월 라마단(이슬람교 금식 기간) 시작을 축하하는 예배에는 3000여 명이 몰려 3회로 나눠 진행했다고 한다.
이날 도쿄 자미에는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를 입은 30여 명의 중년 여성 단체팀도 방문했다. 도쿄 외곽 마치다(町田)시의 한 기모노 상점에서 단골들을 위해 마련한 ‘다문화 체험 행사’였다. 이들은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에 감탄하며 견학 안내를 맡은 담당자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기모노 차림의 한 60대 여성은 “종교로서 이슬람교를 믿진 않지만 이슬람 문화에는 흥미가 있다”며 “최근엔 이슬람 국가로 여행 가는 일본인들도 많아졌다”고 했다. 자미 측은 지난해에만 일본 주요 대학 63곳에서 견학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화려한 내부 실내장식이 소셜미디어용 사진으로 인기를 끌며 ‘다문화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 133곳으로 늘어난 일본 모스크
1980년대 말만 해도 일본에서 모스크는 전국에 3곳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133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건물 내 단칸방 수준의 ‘초미니 모스크’지만, 도쿄 자미 같은 대형 모스크도 여럿이다. 일본 내 이슬람교 신자가 늘어나면서 전국 곳곳에서 모스크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일본의 이슬람교 전문가인 다나다 히로후미(店田廣文) 와세다대 명예교수 연구에 따르면 일본 이슬람교 신자는 1990년 3만 명에서 2010년 11만 명, 2020년 23만 명으로 증가했다. 정부에 종교법인으로 등록된 ‘일본무슬림협회’는 약 27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460명 중 1명은 이슬람교 신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율을 살펴보면,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12만 명) 출신이 전년 대비 56% 늘어나며 1위를 차지했다. 파키스탄 등 서남아 이슬람권 국가에서도 기능실습생 위주로 많이 온다. 숫자만 보면 지난해 기준 베트남(51만 명)이나 중국(39만 명), 필리핀(22만 명)이 상위권이지만, 이슬람권 국가의 증가세가 무척 가파르다.
일본은 불교, 신토(神道) 등 생활에 녹아든 전통 종교의 영향력이 강하다. 기독교조차 세가 약한 일본에서 이슬람교는 여전히 ‘미지의 종교’다. 하지만 최근 모스크는 건설 및 확장 움직임이 활발하다. 동남아와 서남아 등에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오사카에서는 이슬람교 신자가 늘어나면서 2006년 건립됐던 ‘오사카 이바라키 모스크’가 지난해 확장 재건축되기도 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세계 각국에서 1억 엔(약 8억5000만 원)가량을 모금해 건설비로 썼다.
인구 370만 명이 사는 일본 제2의 도시 요코하마시에서도 인도네시아인들이 세운 사단법인이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모스크를 짓기 위해 모금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568만 명에 이르는 인도네시아 유명 배우 레이 무바얀이 소셜미디어에 “일본의 친구를 돕자”는 동영상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홋카이도 관광도시인 오타루나 오키나와 등에서도 모스크 건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
● 곳곳 갈등에도 다문화 공존 모색
최근 한국은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모스크 건립이 무산되는 등 여러 지역에서 모스크를 둘러싼 갈등이 적지 않다. 일본은 한국만큼 격한 갈등은 찾기 어렵지만, 낯선 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숨길 수 없다.
도쿄 자미 홍보 담당자인 일본인 무슬림 시모야마 시게루(下山茂) 씨는 “막연하게 이슬람교는 무섭고 신자들이 모이면 치안이 나빠진다는 이미지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평소엔 드러내고 반대하지 않지만, 자신이 사는 지역에 모스크가 생긴다고 하면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1년 가나가와시에선 대학 유학생을 중심으로 모스크를 건립하려다 지역사회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불만이 커지며 마을 모임 측이 건립 중단을 요청하자, 이들은 야간 출입을 제한하고 소음 발생을 철저히 차단하는 조건으로 주민들을 설득했다. 당시 일부 주민은 “당신들은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와 무슨 관계냐”는 질문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건물을 ‘특이하게’ 짓지 않는 조건으로 2014년 모스크를 세웠다.
이슬람교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잊을 만하면 터진다. 지난달 이바라키현에서는 21세 무직인 일본인이 지역 내 모스크 방화 혐의로 체포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건물 일부를 태웠다. 2001년 도야마현에선 이슬람교 경전 ‘꾸란’을 불태워 길거리에 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도쿄 자미 역시 금요일 대형 예배 때 사람들이 몰리면, “이래서 이슬람교가 싫다”는 일부 주민들의 불만이 여전히 터져 나온다.
몇몇 지역에선 이슬람교가 ‘다문화 공존’을 내걸고 지역사회에 녹아드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오사카에서 재건축된 모스크는 태양광 패널과 액화석유가스(LPG) 시설 등을 갖춰 지진 등 재해 때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피난소’로 지정받았다. 지역 주민들을 초대한 준공식 때는 시장도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일본 이슬람교 신자들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스크 건립 반대 사건을 대부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의 여러 매체들이 한국의 이슬람교 관련 격렬 시위 등을 주요 뉴스로 다뤄 왔기 때문이다. 시모야마 씨는 “일본과 한국 모두 이슬람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이라며 “한국의 이슬람교 관련 단체, 뜻 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편견을 없애기 위해 활동하고 싶다. 한국과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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