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겨울 속초공항, 여객기 기장 규식(성동일)은 태인(하정우)이 피우고 있는 담배를 보며 묻는다. 태인이 그저 문양이 예뻐서 피우는 담배의 이름은 ‘희망’이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그 대사는 앞으로 벌어질 엄청난 사건들에 대한 복선을 담는다. 그 ‘희망’을 별생각 없이 피울 때까지만 해도 김포공항까지 가는 민항기에 사제폭탄을 든 테러범이 등장할 줄 그는 전혀 몰랐을 게다. 그 테러범이 다짜고짜 폭탄을 터트리고 북으로 가자고 위협하는 상황은 더더욱. 하지만 희망이란 그저 평범한 나날 속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떠오르는 단어가 아닐까. 태인은 결국 그 희망 하나를 붙들고 테러범을 설득하고, 위협하기도 하며, 때론 사투를 벌이다 끝내 의인의 선택까지 하게 된다.
김성한 감독의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에 실제로 벌어졌던 대한항공 항공기 납북 미수 사건을 소재로 했다. 당시 테러범이 제압되는 과정에서 폭탄이 떨어져 점화되자, 수습 조종사였던 전명세는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져 폭탄을 덮음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했다. 테러범은 사살됐지만 두 번의 폭발로 비행기는 동력을 잃고 추락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기장이 고성 바닷가에 비상착륙을 성공시킴으로써 승객 모두 안전할 수 있었다. 전명세는 중상을 입고 결국 이송 중 사망했는데, 이 위급했던 상황의 유일한 희생자였다.
영화에서 테러범 용대(여진구)는 이대로 가면 다 죽을 수도 있다는 태인의 말에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한다.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자의 절규는 그래서 테러범이지만 쓸쓸하게 느껴진다. 희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사회야말로 누군가의 희생 없이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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