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정양환]‘되돌릴 수 없는 이별’로 가는 프랑스-아프리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3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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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아프리카 케냐 콘자시에서 개최된 나무 심기 행사에서 현지 학생이 초원에 심을 묘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콘자=뉴시스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아프리카 케냐 콘자시에서 개최된 나무 심기 행사에서 현지 학생이 초원에 심을 묘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콘자=뉴시스
정양환 국제부 차장
정양환 국제부 차장

“프랑사프리크(Fran¤afrique·프랑스와 아프리카)는 이젠 사라져 가는 과거의 유물이 돼 버렸다.”(AFP통신)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어는 친숙한 말 중 하나다.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나라는 23곳. 영어와 더불어 가장 많다. 프랑스어가 유일 공용어인 나라는 11개국으로 영어(8개국)를 앞선다. 10여 년 전 아프리카 출장 때, 한국인이 더듬더듬 뱉은 영어를 벨기에 출신 가이드가 프랑스어로 통역하니 이라크계 공무원이 아랍어로 현지인에게 물어봐 주던 희한한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온 프랑스의 아프리카 영향력은 그만큼 질기고 뿌리 깊었다. 하나 요즘 파리의 입김이 예년 같지 않다. 솔직하게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지경이다.

지난해부터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에선 줄줄이 쿠데타가 벌어졌고, 프랑스에 반기를 들고 주둔군을 몰아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네갈 등 그나마 안정적인 국가조차 반(反)프랑스 물결이 거세다”며 “과거 식민지였던 20여 개국 중 상당수가 연을 끊으려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프랑스가 자초했다는 게 중론이다. 현지 치안을 등한시한 병력 주둔은 자국의 군사적 이익만 좇았다. 투자 역시 자원 개발에 치중해 부당한 경제 수탈로 읽혔다. 한참 전부터 경고음이 났건만 프랑스 정부는 안일했다. 민심을 잃은 정권 편만 들어 시민사회도 등을 돌렸다. 프랑스의 마르크 메미에 전 아프리카 특별고문은 WSJ에 “현지의 부패한 집권세력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존 정책을 고집했다”고 했다.

그럼 프랑스가 밀려난 ‘빈자리’는 누가 채우고 있을까.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마저 아시아태평양에 치중하며 소홀한 틈을 타 러시아와 중국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나라의 접근법은 다소 다르다. 러시아는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을 통한 군사 지원이 중점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경제 원조에 집중한다. 이리 정성을 쏟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프리카를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 대항할 교두보로 삼으려 한다.

물론 프랑스가 팔짱만 끼고 있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프랑스는 최근 수직적이던 전통적 관계를 버리고 동등한 눈높이에서 협력하는 ‘파트너십’으로 외교노선을 바꿨다. 대표적인 나라가 르완다다. 1994년 수십만 명이 숨진 르완다 대학살 뒤 사이가 냉랭했던 두 나라는 최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섰다.

4월 학살 30주년 추도식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의지가 부족해 희생을 막지 못했다”며 사과 영상을 보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NYT는 “프랑스의 영향력 강화와 르완다의 빈곤 퇴치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새로운 ‘데탕트(D´etente·긴장 완화)’의 문을 열고자 한다”고 평했다.

다만 앞길에 붉은 주단만 깔려 있진 않다. NYT에 따르면 르완다 대학살은 여전히 갈등의 불씨다. 르완다는 프랑스에 머무는 관련자 인도를 요구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 결정적인 건, 양국 화해를 주도적으로 이끈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대패하며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다는 점이다. 승기를 잡은 극우 세력은 자국우선주의를 강조해 왔다.

프랑스의 아프리카 입지 축소는 그저 한 시대의 종언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WSJ는 “불량 정권들이 ‘힘의 공백(power vacuum)’을 메우고 있는 상황은 결국 아프리카의 서방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 국제질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산이 변하면 꽃이 지는 건 순리다. 프랑스가 떠난 뒤 러시아나 중국은 아프리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까. 돌고 돌아도 검은 대륙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만 같다. 세상 어디도 편할 날이 없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아프리카#프랑스#프랑사프리크#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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