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 적용하는 안이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의 대립 속에 무산됐다. 노·사·공익위원 9명씩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그제 제7차 전원회의를 열고 반대 15표, 찬성 11표, 무효 1표로 구분 적용안을 부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논의가 격해지면서 고성이 오갔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이 투표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위원장의 의사봉을 뺏고 투표용지를 찢는 등 투표 방해 행위를 해 논란이 됐다.
사용자위원(경영계)들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이 약화된 점을 들어 음식점, 택시운송업, 편의점 등에 대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했다. 이에 근로자위원(노동계)들은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저임금 업종이라는 낙인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3시간여의 공방 끝에 위원장이 표결을 결정하자 볼썽사나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이번에도 무산되면서 “제발 문을 닫지 않게 도와달라”는 소상공인들의 호소는 물거품이 됐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7년간 최저임금이 52%나 오르면서 소상공인들은 업종별 생산성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할 수 있게라도 해달라고 거듭 요구해 왔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자국 상황에 맞게 업종·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 등 돌봄서비스 업종에 외국인을 고용하는 방안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
현실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최저임금법은 사실상 지킬 수 없는 법이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음식·숙박업의 경우 근로자의 37.3%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 소상공인들은 법을 지키려면 사업을 접거나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최저임금 때문에 취약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지금이라도 최저임금제의 취지를 살리면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제도를 유연하게 개편해야 한다. 노동계도 차등 적용에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극한 대립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바꾸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독립 위원회나 전문가 그룹이 거시경제 상황과 노동시장 변화를 분석해 합리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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