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우리는, 언제나 밝은 쪽으로[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4일 2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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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4년째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사이버대에서 만난 나의 첫 제자. 항암치료를 받으며 학업을 병행하던 어머니뻘 만학도였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잘 기억하고 잘 감동하던 사람, 헤어질 땐 보따리처럼 따스한 말들을 나눠 주던 사람이었다. 화상 강의 때마다 꼭 화면을 켜두고선 햇살처럼 웃어주던 얼굴이 환했다. 밝은 기운은 정말로 힘이 세서 랜선 강의실조차도 화기애애하게 데워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랜선으로 만나보았다. 서로의 글과 삶을 나누며 사계절을 보냈다. 그때의 기억은 나에게 초심으로 남아 지금껏 학생들을 가르치는 마음가짐이 되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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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아꼈던 첫 제자가 위독하단 소식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무섭도록 슬퍼졌다.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온전치 않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그러나 놀랍게도 글쓰기 강의에 나오는 교수의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반응한다고. 그러니 혹시 음성 메시지를 보내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알음알음 학우들과 연락해 수십 통의 음성 메시지를 모았다. 마음을 활자로 읽을 수 없다면 소리로나마 들을 수 있도록.

제자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슬프고 절망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밝은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다. 우리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하느냐고. 그 시간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했는지, 당신이 얼마나 햇살 같은 사람인지. 조곤조곤 목소리를 녹음했다. ‘밝은 쪽으로’라는 가네코 미스즈의 시 낭독과 함께.

‘밝은 쪽으로/밝은 쪽으로.//잎새 하나라도/해 비춰드는 곳으로.//덤불 속 그늘진 풀은.//밝은 쪽으로/밝은 쪽으로.//날개는 타더라도/등불 있는 곳으로.//밤에 나는 벌레는.//밝은 쪽으로/밝은 쪽으로.//한 치라도 더/빛 내려오는 곳으로.//도회지에 사는 아이들은.’ 그리고 덧붙였다. “밝은 쪽으로 밝은 쪽으로. 언제나 밝은 쪽으로. 다시 만날 우리는.” ‘힘내’라는 말보다 ‘다시 만나자’는 말이 훨씬 희망처럼 느껴졌기에.

며칠 후, 정말로 거짓말처럼 의식을 되찾은 제자가 직접 메시지를 보내왔다. ‘죽을 고비 넘기고 괜찮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기말고사 준비를 못 해서 재수강해야 할 것 같아요.’ 못 말려. 이 뜨거운 학구열을 어쩌면 좋을까. 학우들과 채팅 메시지로 기쁜 소식을 나누며 울고 웃었다. “기적이에요. 여럿이서 마음을 모은 덕분일까요. 참 감사한 오늘입니다.” “웃으며 메시지를 주고받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살아 있는 오늘이 사랑과 감사예요.” 채팅창으로 학우들의 사랑 고백이 이어졌다. 사랑해요. 사랑합시다. 사랑하며 살아요. 푸른 창에 두둥실 떠다니는 활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살면서 이런 마음의 결집을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기적’이라 부를 테지만, 나는 기어코 ‘사랑’이었노라 대답하고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밝은 쪽으로. 그늘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쥐어보듯이 나는 뭉클한 이 마음을 아주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항암치료#학업#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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