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규인]미식축구로 미국 꺾은 일본 부카쓰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5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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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일본 20세 이하 미식축구 대표팀이 미국을 이겼다. 제대로 읽으신 게 맞다. 일본이 미식축구로 미국을 이겼다. 그것도 더블 스코어였다. 일본은 지난달 26일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미식축구연맹(IFAF) 20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미국을 41-20으로 물리쳤다. 연령대를 통틀어 일본 미식축구 대표팀이 미국을 꺾은 건 이 경기가 처음이었다.

일본 ‘야구 소년’에게 고시엔(甲子園), 그러니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꿈의 무대라면 ‘풋볼 소년’에게는 ‘크리스마스 볼(bowl)’이 있다. 일본 전국고교미식축구선수권대회 결승인 이 경기는 크리스마스 무렵에 열려 이런 이름이 붙었다. 부카쓰(部活·동아리 활동)를 하면서 이 경기에 출전하는 걸 목표로 삼은 이야기를 다룬 만화 ‘아이실드 21’도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 미식축구부가 있는 고교는 105개다. 한국 고교 야구부(106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 전국고교체육연맹에 등록된 종목별 팀 숫자를 확인해 보면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결과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일본 고교 농구부는 남자 4194개, 여자 3617개다. 한국은 남자부 30개, 여자부 19개다. 또 일본 고교 배구부는 남자 2756개, 여자 3689개다. 한국은 남자 23개, 여자 17개가 전부다. 그러니 한국과 일본이 이 두 종목에서 ‘아득하다’는 표현을 써도 될 만큼 실력 차이가 벌어진 건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남고 축구부 수도 일본(3844개)이 한국(100개)보다 40배 가까이 많다.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일본에 앞선 건 2018년 6월이 마지막이다.

일본에 이렇게 운동부가 차고 넘치는 제일 큰 이유는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과 취미로 운동을 하려는 학생이 부카쓰를 통해 함께 땀을 흘리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에서 운동부에 가입한다는 건 운동에 ‘올인(다걸기)’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운동부에 자식을 보내겠다는 학부모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출구’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클럽팀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려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소위 ‘엘리트’ 선수들은 여전히 이들에게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기 일쑤다. 고교 야구 클럽팀 분당BC가 선수 수급 문제 때문에 주말리그 참가 철회 의사를 밝히자 한 스포츠 전문 매체는 ‘클럽팀 함부로 만들지 말라’는 칼럼을 내보내기도 했다.

오히려 반대다. 클럽팀이 차고 넘쳐야 한다. 그래서 일본이 그런 것처럼 운동을 하지 않는 학생이 오히려 소수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한쪽은 너무 운동만 하고, 다른 쪽은 운동을 너무 하지 않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 어떤 종목과 사랑에 빠진 모든 이들이 프로 선수 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목표로 삼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미식축구로 미국을 꺾겠다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 노력할 것이다. 그게 바로 스포츠가 가진 힘이다. 아이들에게 땀 흘릴 이유를, 그 꿈을 선물하자.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미식축구#일본#클럽팀#스포츠가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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