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10조4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깜짝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1년 전보다 14.5배 급증한 수준으로,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을 뛰어넘었다. 분기 영업이익이 10조 원을 넘은 것은 2022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 훈풍에 힘입은 삼성전자의 선전에 코스피도 연이틀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한국 경제에 온기가 퍼지고 있다.
실적 개선을 이끈 것은 역시 반도체였다. 업황 한파에 지난해 15조 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봤던 반도체 부문은 올해 1분기 흑자로 돌아선 뒤 2분기엔 완연한 봄을 맞이했다. 인공지능(AI) 시장이 확대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고 D램 등의 가격이 오른 덕이 컸다. 하반기에도 질주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조사업계에선 3분기에 D램과 낸드 가격이 10% 안팎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AI 시대에 주목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양분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 외에도 국내 전자업계의 실적 회복세가 뚜렷하다. LG전자는 1년 전보다 영업이익이 60% 이상 늘면서 2분기 기준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넘겼다. 실적 발표를 앞둔 SK하이닉스도 HBM을 앞세워 깜짝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들의 선전은 경제 지표에도 반영되고 있다. 5월 경상수지는 89억2000만 달러 흑자로, 2년 8개월 만에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선전하며 경기 회복을 이끌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밀리면 끝’인 전쟁처럼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이 수십조 원의 보조금을 앞세우며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1위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고, AI 반도체 시장에서도 마이크론 등의 거센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이번에 찾아온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파도는 어느 때보다 높고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흐름에 잘 올라타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과 AI 시대 첨단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흐름을 놓치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최근 정부와 여야는 모처럼 한목소리로 반도체 산업 지원을 약속했는데 중요한 건 빠른 실천이다. 규제 혁파와 세제·금융 지원, 인재 육성 등을 통해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는 데 민관이 총력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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