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의 인생홈런]태권도 여제 황경선 “등산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 회복”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8일 23시 09분


‘태권도 여제’ 황경선이 서울 불암산 정상에 올라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가벼운 산행을 한다. 황경선 제공
‘태권도 여제’ 황경선이 서울 불암산 정상에 올라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가벼운 산행을 한다. 황경선 제공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태권도 여제’ 황경선(38)은 한국 태권도 선수 중 올림픽 메달을 가장 많이 땄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과 2012년 런던에서는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이자 3연속 메달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왼쪽 무릎 인대가 거의 끊어진 부상을 안고 금메달을 땄다. 황경선은 “천만다행으로 내가 양발잡이였다. 지탱이 가능한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삼고, 왼발로만 공격했다”고 말했다.

그가 올림픽 메달보다 더 자랑스러워하는 건 선수 생활 내내 67kg급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몸 관리를 혹독하게 했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도 매일 한 시간씩 뛰는 것을 거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그도 예상치 못한 대상포진에 쓰러진 적이 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코치로 참가한 황경선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찾아온 대상포진 때문에 말 못 할 고통을 겪었다. 큰 경기를 앞둔 선수들을 생각하면 아픈 티를 낼 수 없었다. 혼자 몰래 주사를 맞으며 버틴 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2주간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어야 했다. 황경선은 “운동을 많이 하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운동과 함께 박사 과정을 병행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다.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그는 등산을 선택했다.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진 건 멋모르고 올랐던 설악산 등반이 계기가 됐다.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정상을 올랐다는 그는 “8시간 걸려서 겨우 정상을 찍었는데 내려올 때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발가락이 너무 아파 평지를 걷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고생했지만 그는 “‘이런 맛에 산에 가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몸은 힘들었지만 가을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눈에 새기고 왔다”고 했다.

이후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산을 찾는다. 집 근처인 서울 아차산이나 천마산, 청계산 등을 자주 간다. 시간이 있을 때는 강화 마니산 등을 오르기도 한다. 긴 산행보다는 3시간 안팎의 가벼운 산행을 선호한다. 몇 달 만에 몸이 가벼워졌고 잔병치레도 사라졌다.

건강을 되찾은 황경선은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2022년부터 모교 한국체대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그는 이르면 내년 1월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처음엔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몰랐던 것들을 찾아보며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행정가의 길을 걸을지, 지도자가 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만 박사 학위 취득 후 가장 먼저 영어를 배우려 한다. 그는 “세계태권도연맹(WT) 코치위원 5명 중 한 명으로 일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영어 실력이 모자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해 너무 답답했다”며 “한국 태권도 발전을 위해 기여하려면 영어가 필수라는 걸 절감했다. 어떤 길을 가든 몸으로 부딪치며 열심히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태권도 여제#황경선#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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