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꿀 기회는 누구에게나 세 번 주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배우자로 누굴 만나느냐, 그 배우자와 어떤 아이를 낳느냐. 이 중에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배우자 한 명뿐이다. 주로 기혼 꼰대들은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그만큼 결혼 상대가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똘똘한 한 채’가 답이 돼 버린 요즘 세상에는 같은 아파트 입주민 중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지난해 8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초고가 아파트 얘기다. 이곳 입주민들은 올해 4월 결혼정보회를 결성해 첫 정기모임을 가졌다. 입주민 당사자와 자녀 등 가족을 대상으로 가입비 10만 원에 연회비 30만 원을 받고 맞선을 주선해준다고 한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반포동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입주민끼리 사돈을 맺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된다. 이곳 전용 84㎡는 올해 4월 42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요즘같이 초저출산 시대에 이곳에 사는 외동딸과 외동아들이 만난다면 어떨까. 이들이 양가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게 될 수십 년 뒤 ‘똘똘한 두 채’는 얼마가 돼 있을까.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달 첫째 주까지 15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전셋값이 치솟는 가운데 하반기(7∼12월)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전면 개편 카드를 꺼내들면서 핵심 입지 부동산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 진입장벽이 낮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반면 가격 회복세가 더딘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수도권 및 지방 아파트는 침체가 지속되면서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결국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로맨스를 믿고 있지만, 강남 아파트 입주민과 결혼하는 시골 청년은 가뭄에 콩 나듯 할 것 같다. 개천에 나는 용보다 드물지 않을까.
청년들의 로맨스를 파괴하고 있는 건 정부의 똘똘치 못한 정책이라고 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문재인 정부 때 가만히 있다가 벼락거지가 된 청년들은 또다시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에 ‘영끌’ 매수에 나서고 있다.
말려도 모자랄 판국에 정부는 ‘빚내서 집을 사라’며 판까지 깔아줬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올해 4∼6월 석 달간 15조 원 넘게 늘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버팀목 대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 1%대 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신생아 특례대출은 출시 5개월 만에 6조 원 가까이 신청이 몰렸다.
이런 상황에 금융당국은 대출 한도를 수천만 원씩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2단계 시행(7→9월)을 불과 엿새 앞두고 두 달 연기했다. 정부는 소상공인 연착륙을 위한 조정이었다고 해명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혼란을 자초한 실책을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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