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총수출액 6322억 달러(약 875조 원) 가운데 해상 운송 수출은 4488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71%를 차지했다. 바다 수출길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
그런데 이 바닷길이 꼬일 대로 꼬였다. 전 세계에서 대규모 선박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 주요 항만은 물건을 가득 실은 배들로 포화 상태다. 항만 주변 바다에는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수십 척의 배가 입항을 기다리며 떠 있다. 선적과 하역을 제때 못 하다 보니 모든 선박 운항 일정이 어그러진 상태다.
9일 디지털 물류 플랫폼 첼로스퀘어를 운영하는 삼성SDS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항만인 싱가포르항과 상하이항의 3∼6월 하루 평균 대기 선박은 약 60대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벨기에 안트베르펜항은 3∼6월 하루 평균 각각 45대, 27대가 대기 중이다. 이들 항구 모두 1∼2월보다 대기 선박 수가 약 50% 늘었다.
적체는 뒤이은 선박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준다. 고속도로로 치면 꼬리를 무는 정체다. 한국에서 싱가포르까지는 배로 보통 2주가 걸렸는데, 요즘엔 4주 이상이 걸린다. 한 달 정도면 갔던 유럽도 50∼60일까지 소요된다.
항만 적체가 심각해지는 건 중국발 물량 증가의 영향이 크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에 앞서 중국 기업들이 물량을 대거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박을 싹쓸이해 선박 부족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수요가 대거 늘다 보니 해운 운임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해운 운송망 차질은 수출 기업에 치명적이다. 해운 운임 상승으로 물류비 부담이 커짐은 물론이고, 선박 정체 현상으로 제때 물건을 보내지 못해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다. 자동차나 전자기기 부품 업체들은 부품을 늦게 보내면 페널티를 부과받기도 한다. 완성품 생산에 차질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이 밖에도 물류 차질은 재고 증가 등 다양한 기업 부담으로 돌아온다.
물류 공급망 위기는 지정학적, 외교적 변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기에 예측하기 매우 힘들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예상은 못 해도 문제 발생 시 빠른 대처가 가능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류 네트워크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전쟁이 벌어지면 그 지역으로 어떤 물건이 얼마만큼 가는지, 어떤 운송 수단을 이용해 어떤 경로로 가는지, 어떤 기업과 업계가 영향을 받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머스크와 에버그린, DHL 등 글로벌 주요 운송사들은 특정 기업의 인수 및 합병 실패, 특정 정부의 정책 및 세금, 예비 부품 조달 위험 등 미시적 요인들까지 위험 요소로 특정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작은 요인도 물류에 영향을 주진 않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문제가 발생하면 대개 기업과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피해를 종합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갈 뿐, 다양한 물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급망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물류 네트워크 모니터링은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인식을 갖고 정부와 기업 모두 공급망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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